[명시 산책] 프란시스 잠 <거기에는 오래된 성채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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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프란시스 잠 <거기에는 오래된 성채가 하나 있다>

by 브린니 2020. 8. 30.

거기에는 오래된 성채가 하나 있다

 

 

거기에는 오래된 성채가 하나 있다, 내 마음처럼

슬프고 음산한. 빈 뜰에 비가 내릴 때,

성채에서는 고운 양귀비들이 굵은 빗줄기에 날개를 접고,

굵은 빗줄기는 그 이파리를 하나씩 벗겨내 부패시킨다.

 

옛날엔 철책 문도 열려 있었겠고,

집 안에서는 허리 굽은 노인들이

형형색색의 사계절이 넘나드는

초록 장식들로 짜인 병풍 곁에서 몸을 덥히고 있었겠지.

 

도시로부터 마차 타고 달려온 페르시발 사람들과

드몽빌 사람들의 도착 소식이 알려지면,

고풍스런 객실엔 때도 아니게 기쁨이 넘쳐흘러

노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기에 무척 바빴다.

 

그러면 아이들은 숨바꼭질하러, 혹은 달걀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고 그러다가도 방마다 걸려 있는

흰 눈을 한 커다란 초상화나

벽난로의 야릇한 조개 장식을 보려고 되돌아왔다.

 

그러는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는 유화로 그린

손자의 초상화를 화제로 떠올렸다.

“그놈은 중학 시절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지만,

늠름하게 걸쳐 입은 교복이 얼마나 어울렸던지!”

 

그때까지도 생존해 있던 그 아이 어머니는

긴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나 짙은 이파리들이

헉헉거리며 싱그러운 개울가에 흔들릴 때면,

눈에 박아도 좋을 죽은 자식 생각에 넋을 잃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가엾은 아이! 어미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괴롭히는 일은 늘 삼갔었지”라 중얼거렸고.

열여섯 살에 죽은, 순하디 순한 아들 생각에

어머니는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제 그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서글프게도.

비 오는 날의 내 마음과도 같이, 장밋빛 양귀비가 비에 젖어서

몸을 접은 채 도사려 있는 철책과도 같이 서글픈 일이다.

굵은 빗줄기는 양귀비 잎을 하나씩 상처 입혀 부패시키고.

 

                                              ―프란시스 잠Francis Jammes(프랑스 1868-1938)

 

 

【산책】

서양의 오래된 성채가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은 꽤 멋지다.

중세 시대의 기사들이 활동했던 시기 돌로 지은 성들은 가히 놀랄 만하다.

 

우리나라 오래된 폐가엔 귀신이 살고 있다고들 한다.

폐가에 가서 담력 훈련을 쌓는다고 소리치며 뛰어다니던 시절이 있다.

 

서양의 오래된 성 역시 음산하고,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이, 13일의 금요일에 식인귀가 나올 듯하다.

스멀스멀 안개가 피어오르고, 회오리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낙엽을 쓸고 지나간다.

오래된 성에는 야수가 살고, 백년 동안 잠자고 있는 공주가 있다.

 

오래된 것들은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져 있다.

시간은 모든 것들을 부식시킨다.

 

시간을 견디며 이겨내는 것들은 거의 없다.

시간은 살아 있는 것들의 죽음을 상징한다.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려서 죽음에 가 닿는가, 그것만 다를 뿐이다.

성채를 이루던 돌들은 아직 버티고 있다.

 

돌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인가.

그러나 성채에서 돌들만이 아직 살아 있다.

 

꽃은 빗방울에도 떨어지고,

사람은 100년을 살지 못하고 사라진다.

 

성채는 부서지고, 무너지고, 허물어졌지만 아직 거기 있다.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수천 년이 지난 성채들은 자신이 거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몇 개의 돌들로 남아 있다.

 

인간은 죽고 없는데 인간이 세운 성은 아직 거기 있다니!

간혹 생명 없는 것들은 긴 생명력에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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