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택]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는 나의 천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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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택]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는 나의 천사를>

by 브린니 2020. 8. 29.

나는 나의 천사를

 

 

나는 나의 천사를 오랫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천사는 나의 품속에서 가난해지고 작아졌다.

그리고 나는 커졌다.

갑자기 나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고

천사는 떨면서 간절히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천사를 하늘로 보내주었다-

그러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천사는 내 가까이에 그대로 있다

천사는 떠다니는 것을 배웠고, 나는 삶을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고맙게 여기게 되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체코, 독일 1875-1926)

 

 

【산책】

수호천사가 있어서 나를 도와주고 힘을 주고 세심하게 돌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정작 천사는 내 품을 떠나지 못할 때 가난해지고, 파리해지고, 쇠약해진다.

 

내게 모든 것을 주기 때문에?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없기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천사들이 인간의 품에서는 날개를 잃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 읽었던 선녀와 나무꾼이 생각난다.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훔쳐 억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잘 살았다.

나무꾼은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선녀는 불행했을 수도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선녀는 옷을 되찾아 하늘로 날아갔다.

 

천사들은 가끔 우리 곁에 와서 우리와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천사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우리는 부유해지지만 천사는 빛을 잃을 수 있다.

천사는 인간을 돌보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적당한 때에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돕고, 우리에게 친절하게 이야기를 걸어주었으면 좋겠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약간의 황금을 주고.

우울한 사람에게 마음이 행복해지는 약을 주고.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새로운 사랑을 심어 주고.

 

천사가 진짜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천사가 찾아올 것이다.

믿음은 믿음을 배반하지 않으니까.

 

요즘처럼 재난이 연거푸 들이닥치는 시간들에는 천사가 한 번쯤 나타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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