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와 키클롭스 ― 그리스신화 읽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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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오디세우스와 키클롭스 ― 그리스신화 읽기 3

by 브린니 2020. 8. 23.

인간의 눈은 왜 두 개이며 괴물의 눈은 왜 하나뿐인가

 

 

【오디세우스】

 

오디세우스Odysseus는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이타카의 왕이다. 오디세우스는 라에르테스와 안티클레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와 결혼하여 아들 텔레마코스를 낳았다.

 

오디세우스의 실제 아버지는 시시포스라는 설이 있다. 시시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기꾼으로 통하는 인물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의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영리하고 꾀가 많은 사기꾼은 죽음의 세계를 다녀오고도 수명을 다 산 자로 죽은 뒤 산꼭대기까지 돌을 올려놓는 형벌을 받았다.

 

오디세우스가 시시포스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가 전략가이며 협상가에 모략꾼이었다는 점에서 별칭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진짜 시시포스의 아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정식 결혼에 의한 번식보다는 강간과 불륜과 납치에 의한 자식 생산이 흔한 그리스 신화에서 누구의 자식인지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자기가 약속한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원래 미녀 헬레네의 구혼자 중 한 명이었다.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트로이 전쟁의 원인)를 얻기 위해 그리스 전역에서 구혼자들이 몰려들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에게 기회가 없음을 깨닫고 일찌감치 구혼을 포기하고 헬레네의 사촌인 이카리오스의 딸 페넬로페를 신붓감으로 점찍고 그녀를 얻기 위해 헬레네의 아버지 틴다레오스에게 접근한다. 틴다레오스는 헬레네의 구혼자들 중 사위로 선택 받지 못한 구혼자들이 모욕을 느껴 전쟁을 벌이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틴다레오스에게 모든 구혼자들에게 누가 남편으로 선택받든 그 권리를 인정하고 부부를 지켜주겠다는 서약을 먼저 받아내라고 말했다. 오디세우스의 묘책은 성공을 거두었고 틴다레오스는 약속대로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헬레네는 메넬라오스가 차지했고, 후에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트로이 전쟁에 참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시시포스가 자신의 꾀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듯이 오디세우스 또한 자기가 한 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갔고, 승리 뒤 돌아오는 길에도 여러 가지 풍파를 겪게 된다. 시시포스가 신들의 미움을 샀듯 오디세우스 역시 노여워하는 자, 신들의 미움을 사는 자라는 이름의 뜻을 지니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탁월한 지략으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인들을 속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장애를 만나게 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데 수십 년, 거의 평생을 다 허비한다.

 

 

오디세우스는 인간의 표상으로서 아주 적절한 인물이다. 인간은 싫든 좋든 자신의 지략으로 인생을 살아간다. 지략이 잘 먹혀들면 평탄한 인생을 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어려움을 당하고 만다. 오디세우스는 아내를 구할 때 지략을 써서 아름답고, 정숙하고, 부와 권력을 지닌 여자와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자신이 약속한 말 때문에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갖은 모험을 다 겪게 된다. 하지만 그런 모험 속에서도 지략을 써서 어려운 곤경을 헤쳐나간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그린 <오디세이아>에는 오디세우스가 각종 모험을 겪는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오디세우스 이야기는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집을 나가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갖가지 사건을 겪지만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패턴인 것이다. 대부분의 민담이나 전설, 동화와 소설에 이르기까지 이런 플롯이 적용된다.

 

오디세우스는 젊은 시절 멧돼지에게 무릎에 큰 상처를 입었는데 이것이 오랜 세월이 지나 그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을 증명하는 표징이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을 고향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하는데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증명하면서 좋은 결말로 끝난다는 것 역시 많은 이야기들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는 소설도 있다. 프랑스 작가 장 클로드 카리에르의 소설 <마틴 기어의 귀향>은 주인공이 전쟁에서 돌아오자 모든 사람들이 그의 귀환을 반긴다. 그러나 그가 진짜 마틴 기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자는 오직 그가 기르던 개뿐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혹은 진짜 모를 수도………

 

오디세우스의 모험 가운데 흥미를 끄는 이야기 중 하나는 키클롭스와의 만남이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 신의 아들인 외눈박이 괴물을 만나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로 규정하면서 벌어지는 모험담이다.

 

 

【키클롭스】

 

키클롭스Cyclopes는 포세이돈의 아들들로 외눈박이 괴물로 알려져 있다. 키클롭스는 한 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포세이돈의 외눈박이 아들들의 총칭이다. 오디세우스가 만난 것은 키클롭스 형제들 가운데  우두머리격인 폴리페모스Polyphemus이다.

 

오디세우스는 바람에 떠밀려 키클롭스의 섬에 상륙한 뒤 키클롭스의 동굴로 가서 그의 음식들을 훔쳐 먹는다. 키클롭스가 돌아와서 오디세우스와 인사를 몇 마디 나누지만 오디세우스가 제우스와 신들의 이름을 들먹이자 심기가 불편해져서 오디세우스의 부하 두 명을 잡아먹는다.

 

다음날에도 부하 둘을 잡아먹었는데 오디세우스는 식사를 했으니 음료로 목을 축이라며 박쿠스의 포도주를 선물한다. 포도주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진 키클롭스는 오디세우스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없는 자)'이라고 대답했다.

 

I'm Nobody 혹은 Nathing.

 

오디세우스는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를 선물했으니 답례를 하라고 재촉한다. 키클롭스는 답례로 맨 마지막에 오디세우스를 잡아먹겠노라 약속한다.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가 술을 마시고 잠들자 불에 달군 창으로 키클롭스의 눈을 찌른다.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에게서 달아날 수 있었다. 폴리페모스는 다른 키클롭스들을 부르며 도움을 요청했다. 키클롭스들은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으냐고 물었다. 폴리페모스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즉 없는 사람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고 소리쳤다. 키클롭스들은 폴리페모스가 잠결에 헛소리를 한다고 여기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때 멀리 달아난 오디세우스는 자기는 이타카의 오디세우스라고 소리친다. 키클롭스는 신탁에서 자신이 오디세우스에게 눈이 멀게 되고, 그 때문에 오디세우스 역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험한 고난을 당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키클롭스는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그는 제우스를 두려워하지 않다.

 

나그네여, 나더러 신들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라고 명령하다니

너는 어리석거나 멀리서 왔나 보구나.

키클롭스는 아이기스*를 가진 제우스보다 축복받은 신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우리가 훨씬 더 강력하기 때문이지.

 

이처럼 교만한 태도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올바로 보기 힘들다. 그는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키클롭스는 이미 신탁으로부터 자신이 오디세우스에 의해 눈이 멀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까맣게 잊었을 뿐 아니라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에서 전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렸음에도 귀담아 듣지 못했다. 키클롭스는 눈 멀고, 귀 먼자인 것이다.

 

키클롭스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을 매우 낮추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아첨인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협잡꾼이라는 비난을 받는 자라는 점에서 타당한 해석이다. 키클롭스는 교만한 자이므로 오디세우스는 반대로 자신을 아주 낮춤으로써 죽지 않고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자, 없는 자라는 말은 키클롭스를 조롱하는 말일 수 있다. 너는 누구냐? 너는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오디세우스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키클롭스의 무지를 비웃는다. 이미 앞에서 트로이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음에도 그는 오디세우스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술을 먹고 기분이 좋아져서 다시 이름을 묻는 것이다. 어리석고 술에 취한 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말함으로써 키클롭스를 조롱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에서 벗어난 뒤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말한다. 오디세우스는 승리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키클롭스에게 알리는 것이다. 너는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인간에게 공격을 당해 눈이 멀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닌 자에게 패배했다, 너는 제우스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한낱 아무것도 아닌 인간에게 지고 말았다.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포세이돈의 아들은 왜 외눈박이로 태어났을까. 거기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렇다면 눈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눈이 하나밖에 없기에 사물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눈이 두 개 있다. 두 개의 눈으로 사물을 온전히 보고, 공정하게 판단하라는 뜻이 아닐까. 인간은 동시에 사물과 사건의 두 가지 측면을 볼 수 있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 선한 것과 악한 것 따위다. 인간은  두 개의 눈으로 두 가지 측면 즉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고,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는 인간이 두 가지 선택 가운데 하나를 잘못 선택한 결과물일 수 있다. 인간을 잡아먹는 키클롭스는 괴물이지만 인간과 거의 모든 면에서 닮았다. 다만 눈을 하나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두 개의 눈을 가지고 있지만 나쁨을, 그름을, 악을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이 무언가를 잘못보고 잘못 선택했을 경우 괴물로 둔갑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신화는 상상과 상징의 결과물이다. 인간과 흡사하지만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은 눈을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 괴물은 언제나 하나밖에 볼 수 없고 하나만 선택한다.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보지 못하고, 하나만 보고, 그것을 강행하는 독재자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 독재자들은 백성들을 잡아먹는 괴물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외눈박이 괴물은 신을 두려워 할 줄 모를 만큼 교만하고, 잘못보고, 잘못된 판단과 선택을 해서 결국 자신과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인간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이기스Aegis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방패이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제작하였고 중앙에 고르곤(메두사)의 머리가 붙어 있다. 때때로 아테나 여신이나 아폴론 신이 사용하기도 한다. 제우스의 번개도 막아낼 만큼 튼튼하고, 흔들면 천둥 번개가 치고 폭풍이 휘몰아친다.

 

* 마틴 기어의 귀향(소설) / 장 클로드 카리에르

프랑스 16세기에 실제 있었던 사건재판을 작품화한 영화소설. 오랜 방랑 끝에 돌아온 마틴 기어. 그러나 또 다른 마틴 기어와 살고 있는 아내. 두 남편을 섬겨야 했던 한 여인의 진실과 거짓의 희비극을 그렸다.

 

* 마틴 기어의 귀향(영화)

감독 : 다니엘 비뉴, 출연 : 나탈리 베이, 제라르 드 빠르디유

 

* 써머스비 (마틴 기어의 귀향 / 헐리우드 리메이크)

감독 : 존 아미엘 출연 : 조디 포스터, 빌 풀먼, 리처드 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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