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아르튀르 랭보 <까마귀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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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아르튀르 랭보 <까마귀 떼>

by 브린니 2020. 8. 22.

까마귀 떼

LES CORBEAUX

 

 

주여, 초원이 추울 때,

무너진 촌락의

긴 삼종 소리 침묵했을 때……

꽃이 진 자연 위로

떨어지게 하소서, 거대한 하늘로부터

사랑스럽고 멋진 까마귀 떼를.

 

악착같이 외쳐대는 이상한 군대여,

차가운 바람이 너희들의 보금자리를 공격하는구나!

너희들, 노란 강줄기를 따라,

오랜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길에,

도랑과 구렁 위로

해산하라, 집합하라!

 

엊그제의 주검들이 잠들어 있는,

프랑스의 들판 위로, 수천 마리 무리 지어,

선회하라, 그렇지 않은가, 겨울날,

지나가는 나그네마다 생각을 되새기도록!

 

그러니 의무를 외치는 자가 되어라,

오, 우리의 불길한 검은 새여!

 

그러나 하늘의 성자들이여, 황홀한 저녁 속으로

사라진 돛대, 떡갈나무 꼭대기에는

5월의 꾀꼬리들을 남겨두시라,

숲의 깊은 곳, 벗어날 수 없는 풀 속에,

미래 없는 패배가

묶어놓은 자들을 위하여.

 

―아르튀르 랭보 Arthur Rimbaud (프랑스, 1854–1891)

 

 

【산책】

까마귀떼가 하늘을 점령하고, 들판으로 내려앉는 장면은 장관일 것이다.

추상적인 죽음이 실제 어둠으로 땅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하늘을 향해 빌 것이다.

하늘에서 지옥이 떨어지지 않기를.

 

까마귀들은 언제나 천시되어 왔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까마귀는 불길한 새,

불운을 가져오는 새로 알려져 있는 듯하다.

 

까마귀는 불길한 새가 아니다.

다만 불길한 일을 예언한다.

까마귀가 울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는 것뿐이다.

불길한 징조를 알렸을 때 그것을 막지 못하면 결국 안 좋은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것은 까마귀 때문이 아니다.

 

한 점 티 없이 온통 검은 색으로 몸을 칠하고

불길한 일을 예언하는 울음을 우는 어둠의 새

까마귀는 사람 가까이에서 인생의 길흉을 말하고 있다.

 

까마귀는 매우 영리하며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으며

불길한 울음소리로 그것을 알린다.

 

세 발 까마귀는 상징의 세계에서만 존재하지만

군대를 이끌 힘을 지닌 듯 보인다.

 

전쟁터, 시체가 있는 곳에 까마귀가 있다.

썩고, 상하고, 냄새나는 것들을 먹는 까마귀 떼가 있다.

나쁜 것들을 먹고 사는 까마귀,

그들이 먹지 않으면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

 

죽은 영웅들은 까마귀가 뜯어먹어도, 육체가 다 사라져도 영웅들은 전쟁터를 지배한다.

땅에는 시체가 즐비하고, 하늘에서는 까마귀들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까마귀들이 온다.

붉은 저녁노을이 밀려간 뒤에 어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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