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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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by 브린니 2020. 9. 1.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마태복음 12장 9절~13절)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비벼 먹은 일로 꼬투리를 잡은 유대인들은 안식일 문제로 예수님을 송사하기 위해서 마른 자를 데리고 나옵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매일 회당을 방문하였고, 모든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절기에 반드시 회당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회당은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기도하는 곳이었을 뿐아니라 지방 법정으로서의 역할까지 감당했으니 유대인들은 일부러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의 기회를 잡아 정식 재판에 회부하려 하였습니다.

 

그들이 데리고 마른 사람의 증상은 손상으로 인한 중풍이 아니라 피의 순환이 나빠 오른손의 근육 기능을 상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랑케(Lange) 의하면 마른 사람이 우연히 회당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송사하려는 악의적인 도구로 사용하려고 특별히 불러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회당 안에서 회당의 목적과는 반대로 악의에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 병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면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으로 송사하고, 예수님이 병자를 외면하면 제사보다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는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어기게 만들려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안식일에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들의 질문에여세스티라는 낱말을 사용하였는데, 이는합법적인가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자비로운 일인가가 아니라 합법적인 것인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하십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웅덩이에 빠진 동물에게 일차적으로 안에서 무사히 안식일을 지낼 있도록 하루치의 음식을 넣어주도록 규정하였고, 만약 안에서 동물의 목숨이 위험할 같으면 사람이 직접 동물을 끌어내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규정을 직접 예로 드시면서 안식일에 동물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에게는 더욱 자비를 베푸는 것이 의롭고 당연하다고 주장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마디 더하시길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는 선한 일에 대한 개념이 없이 규정된 법규를 지키는 것에만 초점이 있었으나 예수님은 규정을 넘어서서 적극적 의미의 선을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킬 것이냐, 것이냐에 초점이 있지만, 예수님은 안식이 선을 행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악을 행하기 위해 존재하는가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코로나 사태에 직면하여 교회들이 행하는 예배에 대한 초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배는 목숨보다 소중하다 말로 10 이상 집합금지가 내려진 정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것은 예배를 지킬 것이냐, 것이냐에 초점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주일이 선을 행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악을 행하기 위해 존재하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일까요?

 

코로나 2 유행의 확진자 많은 수가 교회 모임 관련이라는 현실 속에서 침체된 경제생활로 고통받고, n 감염을 통해 억울하게 감염된 많은 이들이 가족과 격리되어 병상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라도 눈을 돌린다면, 웅덩이에 빠진 양보다 귀한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렇게 외면할 있는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일부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의 행태라 해도 인정할 없는 것은 목회자 부부가 감염되고도 이동경로를 거짓으로 말하고, 아픈 성도에게 코로나 검사를 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잘못된 행태들입니다.

 

물론 때문에 부끄러워 정체성에 상처를 입고, 가슴 아파하며 대신 회개하는 많은 진실한 크리스천들의 고통까지 만들어냈음에도 사과해야 것입니다.

 

정말 그토록 믿음이 좋고 성경 말씀대로 산다고 자부한다면, 제발 말씀만이라도 제대로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묵살하고 드리는 예배를 과연 하나님이 받으실까, 어린 아이에게 물어봐도 아니라고 도리도리 고갯질을 것이 뻔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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