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기택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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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기택 <소>

by 브린니 2020. 8. 12.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 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김기택

 

 

【산책】

눈이 말을 한다.

소뿐 아니다.

 

사람도 눈으로 말을 한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 그 눈 속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담겨 있는가.

 

화를 내면서 볼 때

눈물이 그렁해서 볼 때

 

심지어 눈을 피할 때조차 말을 한다.

눈은 단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지만 수많은 말을 소리 없이 전달한다.

 

소의 언어를 연구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소의 눈망울에 고인 눈물이 정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당신의 눈에 담긴 말들은 내게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지.

말을 삼키고 또 삼키면 왜 끝내 울음이 터져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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