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것은 내가 외국 책에서 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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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것은 내가 외국 책에서 읽은>

by 브린니 2020. 8. 11.

그것은 내가 외국 책에서 읽은

 

 

그것은 내가 외국 책에서 읽은

미켈란젤로의 생애였다.

그는 척도를 넘은,

거인처럼 큰,

잴 수 없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었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려 할 때

반드시 되돌아와서

다시 한 번 그 가치를 총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시대의 온갖 짐을 모두 들어 올려

자신의 가슴속 심연으로 던져 넣는다.

 

그의 이전에 산 사람들은 고뇌와 쾌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삶을 오직 하나의 덩어리로 느끼고

만물을 하나의 사물로 받아들인다-

신만이 그의 의지를 넘어 널찍이 군림한다.

그리하여 그는 신의 영역에 닿을 수 없음을 알고

품격 있는 미움으로 신을 사랑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체코, 독일 1875-1926)

 

 

【산책】

예술가들의 생애를 쓴 책들은 흥미롭고, 아름답다.

예술가들의 생은 고난과 고통으로 얼룩져 있는 경우도 많고,

자유와 방종, 향락과 타락으로 점철된 경우 또한 많다.

예술가들 중에 늘 행운이 깃들고 돈과 명예가 따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예술을 향한 열정만큼은 모두 다 같다.

거의 미친 듯이 예술에 자기 자신을 불태웠다.

예술이 곧 자기 자신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자기 자신이 없어지고 예술이 자신을 차지할 정도로 예술에 미친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미켈란젤로, 베토벤.

다 열거할 수 없다.

오직 예술만이 그들의 생을 요약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위대한 작품을 남겼든 그렇지 못했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삶이 그랬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그렇게 살다가 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데 만족감을 갖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예술가로서 살았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면서 기쁨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살면서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았다는 뜻이 아니다.

예술 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과 기쁨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특히 가족이나 연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고통 속에 있기에 안타까워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예술하느라 생활에는 잼병이었을 테니까.

 

사람에게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말할 수 있을까.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을 만큼 다른 것에 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살았을 때는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해 많은 비난이 쏟아지지만 그들이 죽고 나서는 그들의 삶을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

 

죽고 나서 인정받은 고흐는 평생 미친 사람 취급을 받으며 귀를 자를 때까지 그림에 미쳐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천지 창조를 그렸다.

그것을 그리면서 신을 찬양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그림에 탄복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뭔가를 창조해내었다는 뿌듯한 마음(매우 소박하게)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큰 상을 내렸음에 분명하다. 이보다 예술가들을 더 미치게 하는 것이 없다. 스스로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는 것. 그런 기쁨은 남이 줄 수 없다.

 

예술가들에게 고뇌와 쾌락을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예술가들의 고뇌는 바로 쾌락이니까.

 

고뇌가 없으면 쾌락도 없다.

그 사이에 예술 행위가 있다.

 

창조라는 행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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