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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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브린니 2020. 8. 10.

괴테의 젊은 날, 실제로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마음을 토대로 썼다는 이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선량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인물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로테에게 약혼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베르테르를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의 길로 인도했고, 그 약혼자가 비열하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 베르테르가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친절하고 바른 성품을 가졌으며 로테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아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고통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삼각관계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선량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경우, 사랑하는 두 사람을 위해서 한 사람이 사라져주는 방식이 가장 평화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르테르의 마음속에는 로테를 가질 수 없는 삶의 고통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새록새록 올라옵니다.

 

베르테르는 ‘자살’이라는 마음속 단어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데, 베르테르가 로테를 그렇게까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줄은 짐작하지 못하는 로테의 약혼자는 잔인하게도 “자살이란 결국 나약함 때문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베르테르는 로테와 함께 있고 싶어서 자주 로테의 집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약혼자를 만나는 일이 많아지는데, 그때마다 이런 식으로 혼자만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사랑함으로 행복하지만, 동시에 그 이유로 불행합니다. 베르테르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단지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만 이 책을 읽는다면, 매우 지루할 것입니다. 그러나 베르테르가 겪는 정신적 고통의 수준은 마치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뇌한 햄릿을 떠올리게 할 만큼 깊습니다.

 

그 정서에 공감할 수 있는 독자라면 베르테르가 몹시 자신과 비슷할 만큼 연약하고 예민하여 한 줄기 바람에도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애처로워할 것입니다.

 

고통은 사람을 초조하게 몰아붙여 견딜 수 없게 함으로 무엇이라도 하게 만듭니다. 베르테르 역시 로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공사관에 일자리를 부탁해 바쁘게 일을 하기도 합니다. “환경의 변화를 원하는 욕구는 아마도 마음속 깊이 깃들여 있는 불쾌한 초조감이고, 그것은 내가 어디로 가나, 내 뒤를 따라다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의 곧은 성정은 일에 있어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총을 사게 되며, 결국 오래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그 배경에는 신분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당대의 허례허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질서에 어울리지 않는 베르테르는 내쫓기듯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기성사회의 질서란 신분의 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개인을 몰아세우며, 그 질서 속에는 로테의 약혼과 결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성사회의 도덕률은 베르테르의 사랑을 결코 인정치 않기에 베르테르의 마음의 순수성은 비난받아 더럽혀지게 될 것입니다.

 

삶 속에서 베르테르가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어주던 선량함과 그저 한 여인을 사랑했을 뿐인 순수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다가오는 것은 비난과 질타뿐이기에 그는 기존 질서를 거부하며 자신의 진정성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합니다.

 

베르테르가 죽음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로테를 찾았을 때, 로테는 그제야 자신이 베르테르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깨닫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음을 깨닫지만 이미 로테는 결혼한 상태였고, 결혼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로테는 괴로워하면서 마지막 키스를 뒤로 하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괴로운 결별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베르테르는 이제 기쁘게 죽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직 단 한번의 키스, 마지막 키스를 통해서 베르테르는 그녀가 자신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발견했고, 그 사랑을 고이 간직하여 천국에 가서 그녀를 기다리겠다는 소망의 희열을 갖습니다.

 

베르테르는 이미 자신의 물건과 서류 등을 다 정리했고,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해줄 총을 구하는데, 공교롭게도 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로테의 남편이 소유한 총을 빌리는 것뿐입니다.

 

베르테르는 여행을 가는데 총이 필요하다면서 하인을 로테의 집에 보내 총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하인의 방문을 받은 로테는 남편이 총을 내주라고 하자 직접 그 손으로 총을 내어줍니다.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 이끌 총을 로테가 자기 손으로 직접 내어주는 이 장면은 괴테의 천재적인 작가적 재능을 보여줍니다. 잔잔한 이 소설에서 이 부분이 주는 긴박한 느낌은 추리소설에서 보여주는 긴박감과는 다르게 독자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베르테르와 로테의 연약한 마음이 서로를 향하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애처로운 사랑이 총이라는 단단하고 매몰차며 잔인한 사물로 향할 때 독자는 자신의 가슴으로 한 발이 총알이 날아오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결국 그 총알은 베르테르의 머리를 뚫고 붉은 피가 흐르는 가운데 헐떡이는 숨소리는, 죽어가는 연약한 새처럼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었고, 당시 종교적 배경에서 자살은 가장 큰 죄였기에, 단 한 명의 성직자도 그의 장례를 집도하지 않습니다. 그 선량한 베르테르가 신분, 종교, 사랑, 그 어느 것에서도 기존 질서를 따르지 않는 예외자가 되어 쓸쓸히 어두운 땅 속에 묻힙니다.

 

베르테르의 자살 소식을 접한 로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괴테는 단 한 줄로 그 결말을 독자의 상상에 맡깁니다. 로테의 남편은 “로테의 생명이 염려되었다”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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