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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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by 브린니 2020. 8. 10.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시인이 죽은 날 남긴 말)

 

                                            * 알베르투 카에이루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오른손을 들어, 태양에게 인사한다,

하지만 잘가라고 말하려고 인사란 건 아니었다.

아직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손짓했고, 그게 다였다.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 알베르투 카에이루 : 페르난두 페소아의 수많은 필명 가운데 하나

 

 

【산책】

묘비명에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란 그 사람의 인생이 요약된다.

페소아는 다른 시에서 태어나다 죽다,만 쓰여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인생의 마지막 날에 태양을 향해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마지막 말이다.

꽤 멋지지 않은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의 일부로서, 그 자신이 자연으로서 살면서

그렇게 살다가 마지막 날 태양을 향해 안녕이라고 인사할 수 있다면

괜찮은 인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더 바랄게 뭐가 있는가.

커다란 성공이나 업적, 부와 명예가 그리 대수일까.

 

인생의 마지막 날 후회나 탄식으로 유언을 남기지 않고,

안녕!

이렇게 인사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인생을 살았던 것 아닐까.

 

마지막 날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스스로에게 궁금해진다.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면 태양이나 하늘, 구름이나 바람, 강물에게 안녕할 수 있으련만

도시풍으로 살다가 갑자기 자연을 찾다니.

 

막상 자연으로 돌아가려니 자연과 친해지려고?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거창한 이별사를 할까.

 

정말 우습다.

마지막 날까지 무슨 인생에 대해 할 말이라도 남았다고.

 

정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아직 살날이 꽤 남아서 그런 것일까.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충실히 살다보면 무슨 할 말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 그렇다.

좋은 말이 생각났다.

 

침묵!

침묵의 유언도 있지 않은가.

 

살면서 시도때도 없이 입을 놀렸으니

침묵으로 유언을 대신하자.

 

살면서 고생했다, 입이여, 입술이여, 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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