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폴 엘뤼아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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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폴 엘뤼아르 <봄>

by 브린니 2020. 8. 9.

 

 

해변에는 웅덩이가 몇 개 있고

숲 속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나무들이 있다

산 위에 눈은 녹고

하얀 햇살이 머뭇거리는

풍성한 꽃잎들로

사과나무 가지들은 빛난다.

 

그토록 거치른 세계에서 겨울밤을 보냈기에

순수한 그대 곁에서 이 봄을 누릴 수 있는 것

우리에게 어둠은 없다

 

사라져가는 그 어느 것도 그대에겐 아무 힘이 없고

그대는 추위에 떨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봄은 당연한 봄이다.

 

                                     ―폴 엘뤼아르 Paul Eluard | Eugene Emile Paul Grindel (프랑스 1895―1952)

 

 

【산책】

아무런 걱정이 없는 날씨가 시작된다.

미세먼지도, 장마나 홍수도 없는 청명한 날씨.

 

오늘은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다.

빨래는 아주 잘 마를 것이다.

 

얼굴은 햇볕에 살짝 그을릴 수 있다.

파라솔 양산으로 가리고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햇빛을 보며 산책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기분을 밝게 한다.

초록 나뭇잎들이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 투명하게 빛을 내며 찰랑거리고 있다.

 

봄날, 아지랑이가 들판 곳곳에서 피어오른다.

눈앞이 아른거린다. 땅이 흔들리는 듯하다.

 

평화롭고 안전하고 나른하다.

눕고 싶다.

 

흔들리는 의자에 등을 대고 흔들리고 싶다.

흔들리는 잠에 빠져들고 싶다.

 

꿈도 흔들리고 꿈 속의 사람들도 흔들린다.

잠은 옅다.

 

하지만 달콤하다.

흔들리고 희미한 꿈.

 

거기엔 어둠 한 점이 없다.

푸른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바람이 분다. 잘 살고 있다. 다행이다.

 

봄날, 어느 날보다……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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