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들판과 강을 보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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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들판과 강을 보기 위해서는>

by 브린니 2020. 8. 8.

들판과 강을 보기 위해서는

 

                                                                       알베르투 카에이루*

 

 

들판들과 강을 보기 위해서는

창문을 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나무들과 꽃들을 보기 위해서는

장님이 아닌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런 철학을 가지지 않는 것 또한 필요하다.

철학을 가지면 나무라는 것도 없다 : 그저 관념만 있을 뿐.

오로지 우리 각자만 존재한다, 마치 동굴처럼.

닫힌 창문 하나뿐, 온 세상은 저 바깥에 있다,

그리고 창문이 열린다면 볼 수 있을 것에 관한 꿈,

그건 막상 창을 열 때 보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1923년 4월)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 알베르투 카에이루 : 페르난두 페소아의 수많은 필명 가운데 하나

 

 

 

【산책】

페소아는 철학을 꽤나 미워한다?

플라톤과는 상극인 것 같다.

 

플라톤이 시인을 공화국에서 추방한 것처럼 페소아는 철학을 자신의 시詩와 시학詩學에서는 추방한다.

 

철학을 가지면 나무라는 것도 없다 : 그저 관념만 있을 뿐.

오로지 우리 각자만 존재한다, 마치 동굴처럼.

 

플라톤은 동굴에서 나와 빛을 봐야만 사물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페소아는 철학이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생각의 동굴에 갇히게 만든다고 말한다.

페소아는 철학이 인간을 각자존재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페소아는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로 어우러져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이 철학이라는 동굴에 갇히면 각자로만 존재하기에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각자 자신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페소아는 반대로 말하는 것이다.

자연이 자연 그대로 존재하듯 인간도 자연의 하나로서, 자연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 역시 자신만의 생각의 동굴을 만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닫힌 창문 하나뿐, 온 세상은 저 바깥에 있다,

그리고 창문이 열린다면 볼 수 있을 것에 관한 꿈,

그건 막상 창을 열 때 보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인간이 각자로 존재하면 자신의 동굴에서 생각에 빠지는데

그는 “창문이 열린다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페소아는 “막상 창을 열 때 보이는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철학은 개꿈이라는 뜻이 된다.

 

철학은 정작 온 세상은 저 바깥에” 있는데 저 혼자서 창문을 닫고 있으면서 창문만 열면 온 세상을 다 볼 것처럼 믿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에게 엿 먹으라고 말한다.

시인으로서 이런 정도의 배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보고 노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詩라고

시인 페소아가 말한다.

 

잘 새겨듣기를 (개똥)철학하는 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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