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율리시스 Ulys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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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율리시스 Ulysses>

by 브린니 2020. 8. 5.

율리시스 Ulysses *

 

 

신화란 모든 것이요 아무것도 아닌 것.

하늘을 여는 바로 그 태양도

말없이 빛나는 하나의 신화 ―

살아서 벌거벗은

신의 시신.

 

이곳에 닻을 내린,

존재하지 않아서 존재했던 그.

그의 존재 없이도 우리에게는 충분했다.

오지 않음으로써 왔고

우리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전설은 흘러흘러

현실에 스며들어,

풍요를 낳으며 지나간다.

그 아래에서 인생,

그러니까 무無의 절반은 죽어간다.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산책】

율리시스*는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랑한다.

그 방랑의 기록이 <오디세이>다.

 

전쟁을 나갔으나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방랑하는 이야기.

많은 여인들을 망부석으로 만든 원인이다.

 

신화란 모든 것이요 아무것도 아닌 것.

 

존재하지 않아서 존재했던 그.

 

인생,

그러니까 무無의 절반은 죽어간다.

 

전부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있으면서도 없는 것.

인생(삶)과 무(無).

 

오디세우스가 방랑을 하다가 어떤 섬에서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Cyclops를 만난다.

키클롭스가 자신의 식량 창고를 거덜 낸 오디세우스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냐?”

 

그 때 오디세우스는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I Am Nothing(Nobody).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고,

있지만 없고,

그의 인생은 무無와 같다.

 

그는 고향에서 오랫동안 실종자였다.

실종자란 살아 있으나 나타나기 전에는 죽은 것으로 치부되는 존재다.

혹은 죽은 것 같지만 어디선가 살아 있는 자이기도 하다.

 

트로이의 목마 역시 뱃속에 사람을 숨기고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트로이 사람들이 목마를 보았을 때 그리스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목마는 아무것도 없음을 상징한다.

 

율리시스, 곧 오디세우스는 없는 데 있는 자이다.

 

페소아Pessoa는 포르투칼어로 ‘사람’을 뜻한다. 페소아는 페르조나다.

페르조나는 Person으로 사람을 뜻하지만 배우의 가면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면은 진짜 얼굴은 아닌데 말이다.

불어로 페르손personne은 ‘아무도 아님’을 뜻한다.

 

그러니까 오디세우스가 괴물에게 한 말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인 동시에

“나는 사람이다. (이 괴물아!)” 하고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율리시스, 즉 오디세우스는 시인 페소아의 원형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페소아, 사람, 아무도 아닌 자. 혹은 모두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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