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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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by 브린니 2020. 8. 4.

루이스 세풀베다는 칠레 출신으로 문명에 의해 황폐화되어가는 환경을 주제로 소설을 쓰며, 환경운동을 하는 실천적 소설가로 유명합니다.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어보았습니다.

 

몇 년 전에 세풀베다의 다른 소설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도 동물들이 도움을 청할 사람으로 시인을 꼽는 것을 보고 낭만적이고 순수한 소설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연애소설 읽는 노인> 역시 잔인하고 음험한 밀림 지역을 토대로 메마르고 거친 인간성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럽고 달콤한 연애소설을 읽음으로써 마음의 따뜻함과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루이스 세풀베다의 낭만적인 성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소설의 초반부에는 피가 낭자한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잔인하기 짝이 없습니다. 밀림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야만적인 갱들이 하듯이 서로 내기를 하면서 이빨을 몽땅 뽑아버리기도 하고, 기분이 상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총부리부터 들이대는 모습 속에서 끔찍함을 느끼게 됩니다.

 

밀림 속에 사는 원 부족민들의 삶의 모습 또한 아무리 순수한 삶이라 할지라도 문명인에게는 야만적으로 보이는데다가 치과의사와 마을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밀림 속 부족민들과 별다를 게 없이 잔인해서 치를 떨게 됩니다.

 

그 속에 한 노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아내와 함께 밀림을 개척하여 행복하게 살아보려 했지만, 아무리 씨앗을 뿌려도 우기를 견디지 못하고 다 쓸려내려가며, 밀림의 무성한 잡초들에 의해 쓸 만한 곡식들은 남아나지 않는 상황을 몇 년 견디지 못하고 말라리아로 아내를 잃게 됩니다.

 

그 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밀림 속 원 부족민에 의해 구출되어 그들과 함께 살면서 밀림에 대해서 배워가며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밀림에 관해서라면 노인처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문명인들이 밀림에 들어가야 할 일이 생기면 노인의 도움을 받습니다.

 

노인은 젊었을 때 글을 배웠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다가 문득 어느 순간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때부터 강가의 작은 오두막에서 연애소설을 읽는 것으로 삶의 낙을 삼습니다.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시트콤에서 야동을 보던 이순재 할아버지처럼 조금은 징그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는 것은 일말의 인간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인은 책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끼리의 키스 장면을 읽으면서 밀림 속 부족민들은 키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자연과 하나된 것이며,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그 때임을 인정하고 부족민들과 작별인사를 한 후 일종의 마취제와도 같은 음료를 마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깊이 잠든 그를 부족에서 좀 멀리 떨어진 밀림에 놓아둡니다. 그는 마취제에 의해서 깊이 잠든 상태에서 각종 벌레와 개미들, 짐승들에 의해 살을 뜯어먹힙니다. 얼마 안 가 하얀 백골만 남게 되면 부족민들은 유골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릅니다.

 

문명인에게는 다소 끔찍해 보이지만, 이런 죽음은 그들이 자연과 하나라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행위 역시 죽음의 과정처럼 자연적이고 동물적인 과정을 거칩니다. 그들에게 키스는 다소 생소합니다. 키스는 자연적이고 동물적인 행위를 넘어선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행위에 키스라는 특별한 과정을 가지고 있는 문명인들은 과연 동물적인 밀림과는 다른 고상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이 책에 나온 문명인들은 번쩍이는 시계와 카메라와 혁대를 차고 총을 들고 밀림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밀림의 자연스런 흐름과는 상관없이 자기들 방식대로 사냥을 하고 원하는 자원을 얻으려 합니다.

 

그들은 살쾡이 새끼를 총으로 쏘았고, 어미 살쾡이는 복수를 위해 날뜁니다. 인간의 피 맛을 본 암살쾡이는 여러 명을 물어죽이고, 자신도 죽기를 원합니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인간을 벌하면서 암살쾡이 역시 자연의 법칙을 거슬렀고 그 결과는 죽음뿐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마치 부족민이 자기 죽을 때를 알고 마취제를 먹고 밀림의 음습한 곳에 눕듯이 암살쾡이는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으로 노인을 택했고, 마치 노인에게 자신을 죽여달라는 듯한 신호를 보내며 주위를 맴돕니다. 노인은 결국 암살쾡이에게 총을 쏘고는 눈물과 빗물이 뒤범벅이 된 채 돌아서서 자신의 낡은 오두막으로 걸어갑니다.

 

그의 마음을 위로할 것은 단 하나 연애소설뿐일 것입니다. 이 모든 비극과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사랑의 언어, 영혼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포근한 것을 향하여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깁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류는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고, 참정권이 없었던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기도 했으며,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국제연합을 만들어 서로 회의를 하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도 해방시켜 달라며 자연이 아우성을 칩니다. 북극이 녹아내려 시베리아에 산불이 나고, 남극의 얼음마저 녹고 있는 지금 우리는 자연에 대한 억압을 뉘우쳐야 할 것 같습니다.

 

동시에 문명의 삶을 산다고는 하지만, 그 잔인성에 있어서는 밀림과 여전히 동일한 야수성을 가지고 있음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어느 인물도 그 잔인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다소 중립적으로 보이는 치과의사마저 진실한 사랑은 없이 매춘부에게 들락거리며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노인이 보여준 삶은 밀림의 자연성과 순수성을 그대로 인정하며 존중하되, 인간이 부족민처럼 완전히 밀림과 동화되어 살아갈 수는 없음을 보여줍니다. 적어도 인간은 사랑하는 단 한 사람과 키스를 하는 존재로서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추억하며 소중한 사랑을 지켜갈 수 있는 영혼이 있습니다.

 

또한 노인이 보여준 삶은 문명인들의 무자비한 소유욕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끊임없이 지적합니다. 문명은 우리에게 또 다른 야만성으로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흥미롭고 잔인하며,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운, 이 짧은 소설 한 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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