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해가 지다 말고
저녁해가 지다 말고
내 얼굴에 왔다
낮불을 켜놓은
내 얼굴
얼굴을 버리고 놀다보면
저녁해를 비끼는
새도 될 수 있으련만
―장석남
【산책】
들국화가 부른 <사랑한 후에>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 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 가면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집으로 하나 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 있나
저 석양은 나를 깨우고
밤이 내 앞에 다시 다가오는데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전주가 긴 여운을 주는 곡이었다.
저녁노을 속을 새가 날아간다.
아마도 자기 집을 향해 날아가는 것일 게다.
그런데 한 아이만 석양을 맞으며 서 있다.
노을이 아이의 얼굴을 붉게 물들인다.
낮불을 켜놓은
내 얼굴
얼굴을 버리고 놀다보면
얼굴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표징이다.
그런데 얼굴을 버리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 남을까.
간혹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무도 날 알지 못하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사실 날 알아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세상에서 날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얼굴을 버리고 새가 되어 날아간다.
얼굴을 버리고 곰이나 사자나 물고기가 되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 중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나는 것이다.
석양 사이로 날아가는 새.
얼굴을 버리고 놀다가 새가 되어 날아간다.
내 얼굴을 아는 어떤 사람이 새가 되어 날아가는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새가 되어 하늘을 날면
얼굴을 버린 것보다 몇 배 행복할까.
새들은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얼마 높이, 얼마나 멀리.
저녁해가 자꾸 내 얼굴을 비추면
나는 점점 새로 변해 날고 있을 것이다.
놀던 아이가 그 새를 바라볼 것이다.
한때 나였던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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