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양 떼를 지키는 사람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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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양 떼를 지키는 사람 24>

by 브린니 2020. 8. 5.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알베르투 카에이루*

 

 

24

우리가 사물에서 보는 것은 사물이다.

거기 다른 게 있었다면 왜 그걸 보겠는가?

보는 것과 듣는 것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이라면

왜 보고 듣는 것이 우리를 현혹시키겠는가?

 

본질은 볼 줄 아는 것,

생각하지 않고 볼 줄 아는 것,

볼 때 볼 줄 아는 것,

그리고 볼 때 생각하지 않는 것

생각할 때 보지 않는 것

 

하지만 이것은 (옷을 입은 영혼을 가진 슬픈 우리!)

이것은 깊이 있는 공부를 요구한다,

안 배우기를 위한 배움

또 별들이 영원한 수녀들이고,

꽃들이 참회하는 하루살이 죄인들이라고 시인들이 말하는

저 수도원의 자유 속 격리.

하지만 결국 별들이 그저 별들이고

꽃들이 꽃일 뿐인 곳에서는,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것들을 별들과 꽃들이라 부르지.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 양 떼를 지키는 사람 : 49개의 시들로 묶인 한 편의 시

* 알베르투 카에이루: 페르난두 페소아의 수많은 필명 가운데 하나

 

 

【산책】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존재를 존재만으로 보기.

의미나 가치 부여하지 말기.

사물의 이름은 사물을 부르는 것일 뿐, 그 이름 위에 다른 것을 얹지 말기.

 

페소아는 생각(추론)으로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왜곡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물에서 보는 것은 사물이다.

 

본질은 볼 줄 아는 것,

 

생각하지 않고 볼 줄 아는 것,

 

이것은 깊이 있는 공부를 요구한다,

안 배우기를 위한 배움

 

저 수도원의 자유 속 격리.

 

하지만 결국 별들이 그저 별들이고

꽃들이 꽃일 뿐인 곳에서는,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것들을 별들과 꽃들이라 부르지.

 

생각하는 자는 철학자이지 시인이 아니다.

시인은 보는 자이며 노래하는 자이다.

 

페소아는 생각하지 않고 보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배우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냥 보고 생각하지 않기.

생각 없이 보기.

보고 나서도 생각하지 않기.

 

이렇게 해서 어떻게 시를 쓸까.

아무 생각없이 오로지 감각으로만 시를 쓸 수 있을까.

 

페소아는 아마도 랭보나 보들레르와 같이 견자로서의 시인, 견자의 시학을 따르라는 것인가.

아무튼 페소아는 시에서 생각을 추방하려고 한다.

 

보는 것은 그냥 보는 것인가. 꿰뚫어 보는가.

아무 생각없이 그냥 흘끗보기?

멍하니 뚫어져라 쳐다보기?

 

생각 없이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또 어떻게 하면 그렇게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냥 딱 보는데 그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즉물적인 감각만으로.

 

사물을 지식이나 정보, 지성이나 추론으로 보는 것(아는 것)이 아니라

단 번에 꿰뚫어 보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질을 캐려고 추론해서는 안 된다.

 

눈으로 보는데 마음의 눈이 같이 보는 것.

눈으로 보는데 심장이 함께 보는 것

눈으로 보는데 가슴이 함께 보는 것

손과 발, 오장육부가 같이 느끼는 것.

눈으로 보는데 뇌가 움직이는 것.

 

페소아는 추론 없이 별들을 별들이라고

꽃을 꽃들이라고 말할 때

시가 별들처럼 빛나고

꽃으로 피어날 것을 알고 있다.

 

시는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투명하게 펼쳐놓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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