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꿈속에서 넘어 온 당신의 손이
가볍게 나의 어깨를 두드릴 때 그건 나의 어깨였을까
눈 코 입이 흐르지 않고 흘러가지 않고
당신의 얼굴 위에 꼭 붙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
이 세계의 문들은 모두 반쯤 열려 있는 것인지도
한 짝씩 뒤집어진 신발은 숨 쉬는 것 같다
내게는 일곱 켤레의 숨 쉬는 구두
나는 순서대로 그것을 신지 않고
그것들은 같은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다
열쇠나 지갑이 잠시 나를 벗어나는 것은 반가운 일
그것이 내게 조금 위로가 된다
나도 같은 자리에 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강물처럼 그건 불가능한 일
맑은 물 흙탕물 깊은 물 얕은 물이 수시로 흘러간다
강물에 비춰진 눈 코 입을 모아 얼굴을 만든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닫혀버릴 것 같다
―이근화
【산책】
박정현의 <꿈에>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난 너무 가슴이 떨려서
우리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고 있네요.
이건 꿈인 걸 알지만 지금 이대로 깨지 않고서
영원히 잠 잘 수 있다면
날 안아주네요, 예전 모습처럼.
그동안 힘들었지 나를 보며 위로하네요.
내 손을 잡네요, 지친 맘 쉬라며.
지금도 그대 손은 그때처럼 따뜻하네요.
혹시 이게 꿈이란 걸 그대가 알게 하진 않을거야.
내가 정말 잘할거야, 그대 다른 생각 못하도록.
그대 이젠 가지마요, 그냥 여기서 나와 있어줘요.
나도 깨지 않을게요, 이젠 보내지 않을거예요.
계속 나를 안아주세요, 예전 모습처럼.
그동안 힘들었지 나를 보며 위로하네요.
내 손을 잡네요, 지친 맘 이젠 쉬라며.
지금도 그대 손은 그때처럼 따뜻하네요.
대답해줘요, 그대도 나를 나만큼 그리워했다고.
바보같이 즐거워만 하는 날 보며 (날 보며)
안쓰런 미소로 (슬픈 미소로)
이제 나 먼저 갈게 미안한 듯 얘길하네요.
나처럼 그대도(그대도) 알고 있었군요(꿈이라는 걸)
그래도 고마워요, 이렇게라도 만나줘서.
날 안아주네요, 작별인사라며.
나 웃어줄게요, 이렇게 보내긴 싫은데.
뒤돌아서네요, 다시 그때처럼.
나 잠 깨고 나면 또 다시 혼자 있겠네요.
저 멀리 가네요. 이젠 익숙하죠. 나 이제 울게요.
또 다시 보내기 싫은데 보이지 않아요.
이제 다시 눈을 떴는데 가슴이 많이 시리네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나 괜찮아요. 다신 오지 말아요.
꿈에서 나의 어깨에 닿은 손
그게 당신의 손인지 궁금한 게 아니라
그게 나의 어깨인지 궁금하다.
꿈엔 당신의 존재가 불확실한 게 아니라
내 존재가 확실하지 않다.
나비의 꿈.
내가 나비 꿈을 꾸는지 나비의 나를 꿈꾸는 것인지.
장자의 호접몽은 장자의 것만은 아니다.
내 어깨에 닿은 당신의 손을 느끼며 정말 당신이 내 어깨 위에 손을 얹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당신은 눈 코 입 제대로 있는데 과연 나는 어떨까,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모든 게 내가 꾸는 꿈이니까. 깨고 나서도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세계의 문은 반쯤 열려 있어서 현실의 문으로 나올 수도
환상의 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꿈과 현실은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없지만 사람은 들락거리며 정신 못 차린다.
사람들 중에는 환상에 사는 사람이 종종 있다.
도무지 현실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
중독의 세계에서 놀면서 현실로 돌아올 생각이 없다.
그 세계가 더 현실 같으니까.
숨 쉬는 구두는 구두일까 구두가 아닐까.
숨 쉬는 구두는 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구두가 아닙니다?
열쇠나 지갑이 잠시 나를 벗어나는 것은 전혀 반갑지 않다.
그것이 내게 조금 위로가 되기는커녕 짜증나는 일이다.
나도 같은 자리에 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러다간 도태된다.)
그러나 강물처럼 그건 불가능한 일
그렇다 그건 불가능하다. 최소한 가만히 있어도 사람은 늙는다.
맑은 물 흙탕물 깊은 물 얕은 물이 수시로 흘러간다
강물에 비춰진 눈 코 입을 모아 얼굴을 만든다면
이 세계의 사람들은 모두 닫혀버릴 것 같다
흘러가는 강물에 비친 사람들의 얼굴은 열린 문일까, 닫힌 문일까.
강물에 비춰진 눈 코 입을 모아 얼굴을 만든다면
피카소 그림의 얼굴처럼 형태가 뒤죽박죽일 것이다.
그 눈 코 입 들은 닫힌 세계의 그림일까, 열린 세계를 알리는 표시일까.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강물처럼 인생은 흘러간다는 것뿐.
꿈도 환상도 현실도 다 흘러간다는 것뿐.
흐르는 강물은 인생을 어디로 데려다 놓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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