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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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4)

by 브린니 2020. 8. 12.

진짜 교회 14

 

 

 

8 아버지와 아들

 

김영수 목사는 둘째 아들 집에서 나와 큰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웬일이세요?”

“아들들이 한결같이 웬일이냐고 묻는구나.”

 

“이레도 그랬어요? 효자 녀석도 아버지의 전화가 별로 달갑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 녀석 집에서 나오는 길이다. 정말 오늘 만남은 이레에게 별로 달갑지 않았지.”

 

“아버지, 정말 어쩐 일이세요. 아버지가 직접 전화하시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그래, 그냥 얼굴이라도 좀 보려고. 점심 식사 약속 있니?”

 

“있어도 없습니다. 취소하고 나갈게요.”

“고맙다. 요즘 경영이 어렵다든데.”

 

“아버지 덕분에 채권자 안 만나게 돼서 좋아요. 어디서 뵐까요?”

“네가 자주 가는 곳 ‘옛날이야기’ 어떠니?”

 

“좋죠. 제가 전화해둘게요. 보리굴비 드실래요?”

“그러자. 오랜만에.”

 

큰아들은 말끔한 정장이었지만 얼굴엔 근심이 서려 있었고, 겨우 점심 때인데도 수염이 돋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회사를 넘길 정도로 어렵다고 들었다.”

“글쎄요. 이번 달까지 회수해야 할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렇겠죠.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닙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만약 네가 바라는 대로 안 되면 어쩔 거냐.”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 말 안 듣고 시작한 사업인데 어떻게든 해봐야죠.”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받아라.”

김영수 목사는 통장을 내밀었다. 큰아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통장을 바라보기만 할 뿐 들춰보지 않았다.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이 진실인가보네요. 아버지가 저에게 용돈도 주시고. 그런데 이 정도로는 턱도 없어요. 아버지가 월급 말고 뒷돈을 챙기실 분도 아니고. 그냥 다시 넣어두세요. 아니면 건축 헌금으로 내시든가요. 하기야 교회가 든든해서 아버지께서 헌금 내시는 걸 별로 반기지도 않겠지만.”

“요셉아. 넌 아직도 내가 너를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르겠습니다. 그냥 탕자는 탕자지 돌아왔다고 뭐 특별히 달라지겠어요.”

“그건 그렇고. 이번에 하던 일을 좀 쉬고, 나하고 어디 좀 같이 가지 않겠니?”

 

“네? 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아요, 아버지.”

“내가 안식년이 돼서 브라질로 선교지 방문을 간다. 너와 1년 정도 함께 지냈으면 한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 아들 인우도 축구 좀 더 배우고. 브라질도 요즘 경제가 발전해서 살기가 예전보다는 좋아졌다고 하더구나.”

 

“아버지,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냥 동업자에게 회사를 넘기고 너는 그냥 빠져나와라. 지금 나오는 것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너도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나도 알만큼은 안다.”

 

“아버지.”

“나에게 보여주려고 억지로 버티지 않아도 된다. 너도 할 만큼 했다. 네가 다른 길로 간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려고 할 필요 없다. 이제 그만 쉬어라.”

 

“이제 와서 쉬면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뭘 할지는 일단 쉬면서 생각해보자. 너는 쉬어야 해.”

 

“아버지.”

큰아들은 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눈이었다.

 

“네 할아버지도 목회자였고, 나도 목회자이고, 네 동생도 그렇다. 너는 너의 길을 스스로 택했고, 그 길에서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를 부르신다. 목회를 하거나 사역을 원하시는 게 아니라 네가 그동안 힘들었으니 그냥 쉬라고 부르고 계신다. 그리고 정말 미안하구나. 나는 네가 목회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슨 큰 죄라도 짓는 것인 양 너를 내 곁에서 밀어낸 것 같구나. 내가 아비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 목회를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여기면서 목회의 길을 거부한 너를 탕자 취급했으니 말이다.”

“탕자 노릇 한 것 맞습니다.”

 

“아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다. 또 누구나 죄를 짓는다. 나 역시 너 못지않게 많은 죄를 지었다. 어쩌면 내 죄가 더 크다. 내가 너를 탕자인 양 버려두었으니까.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누구보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네가 알았으면 한다.”

“압니다, 아버지. 그러니 그냥 예전처럼 각자 자기 길을 갑시다.”

 

“아니다. 이제 나는 그럴 수 없다. 너와 함께 가야겠다.”

“아버지 정말 왜 그러세요. 아버지도 할 만큼 하셨어요. 이제 내가 완전히 망하게 생겼으니까 본격적으로 탕자 아버지 역할을 하실 생각이세요?”

 

“나와 함께 브라질로 가자. 거기서 다시 시작하자. 네 인생은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제발 아버지, 그냥 즐겁게 식사하고 돌아가세요.”

 

“넌 무조건 쉬어야 해. 내 곁에서 1년 정도만 쉬어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내 옆에 좀 있어다오. 부탁이다. 내 인생은 그저 위기가 아니라 지금 서 있는 것도 힘들 정도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네? 아버지 정말 무슨 일 있으셨어요?”

 

“내 목회 인생을 걸고 위험한 도전을 하려고 한다. 이레에게도 같이 모험을 하자고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택을 처음으로 하려고 한다.”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브라질에 가서 차차 이야기 하자. 이 통장 받아라. 이것으로 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회사를 넘기고 나와라. 네가 큰아들로서 내 곁에서 날 도와주었으면 한다. 아버지와 동업을 한다고 생각해라. 네가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거다. 더 이상 돈 버는 데 네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나도 더 이상 목회하는 데 내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네? 아버지, 목회를 그만두실 생각이세요?”

 

“어차피 3년 뒤에는 은퇴하잖니. 아무튼 조만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네가 필요하다. 내 곁에 있어다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볼게요, 아버지.”

 

“그래 고맙다. 요셉아, 넌 내 아들이다. 그것도 장자야. 나는 너와 함께 마지막 인생을 보내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곧 연락드릴게요.”

 

아버지와 아들은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함께 캐치볼을 하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잠깐 걸었다.

 

“정리가 다 되면 찾아뵐게요.”

“그래, 곧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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