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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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2)

by 브린니 2020. 8. 10.

진짜 교회 12

 

 

 

7. 1 진짜 목회자의 길

 

김영수 목사는 둘째 아들 김이레 목사의 사택을 방문했다.

이른 시각이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잠들지 않았다면 아들을 만날 것이다. 7시 30분 문을 열고 나온 것은 중3짜리 손녀였다.

 

“할아버지, 아침 일찍 웬일이세요?”

“하은아, 잘 지냈니?”

 

“네. 할아버지. 오늘은 염색 안 하셨네요. 할아버지는 백발이 더 멋져요.”

“고맙다. 네 아빠는?”

 

“할아버지는 아빠만 찾더라. 목사님들끼리만 맨날 속닥속닥…… 목사님들은 수다쟁이에요. 정말 말이 많으시다니까요.”

“맞다, 맞아. 입만 동동 뜰 거다.”

“그래요. 천국에도 입만 날아가실 거예요.”

 

거실로 들어가자 며느리가 나와서 인사를 하고는 커피와 다과와 과일을 내왔다.

 

“진수성찬이구나, 고맙다.”

“아버님께서 아침 일찍 오시니 좀 불안한데요. 이렇게 일찍 오신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설마 안 좋은 일은 아니겠죠?”

며느리가 생글거리며 물었다.

 

“글쎄다. 내가 하는 일이 영혼에는 좋지만 간혹 육체에는 별로 그렇지 못해서 말이다.”

“목회자가 영혼만 살리면 됐죠, 뭐. 잘 오셨어요.”

 

며느리는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자신이 가져온 이야기를 듣고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도전과 시험이 될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시험을 통과하고, 더 큰 비전으로 나아갈 수 있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아버지, 웬일이세요. 이렇게 일찍.”

아들이 방에서 나오며 인사했다.

 

“아침은 먹었니?”

“네, 방금 아버지 드시는 걸로 간단히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허허. 우리가 얼마나 일 중심적인 사람들인지 알겠구나. 사역보다 중요한 게 교제 아니냐.”

“네, 네. 이론적으로는요. 성경 원리는 그렇습니다, 아버지. 늘 사역에 쫓겨서 문제지.”

 

김영수 목사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이론과 실제와의 괴리는 심했다. 믿음과 현실 상황과의 거리도 그만큼 멀었다.

 

“나는 내년에 브라질 갔다가 교회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영수 목사는 단도직입으로 말을 꺼냈다. 굳이 우회로를 택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아들에게 아버지의 뜻만 전하면 된다. 동의를 구하러 온 것도 아니다. 다만 아버지의 뜻이 아들에게 제대로 전해지기만을 원할 뿐이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브라질에 계속 머무실 작정이세요?”

“이 나이에 어떻게 객지에서 오래 있겠니. 안식년이 끝나더라도 교회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란 말이다.”

 

“아니, 그럼 어쩌실 생각이신데요.”

“난, 이 교회에서 은퇴하고, 원로 목사가 될 생각이 없다. 귀국해서는 다른 곳에서 섬기다가 정년을 맞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생각이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목회가 3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다른 곳에서 섬기시겠다니 이게 무슨…….”

“안식년 동안 교회를 섬길 분을 찾았다. 그분에게 교회를 맡길 생각이다. 아무튼 나는 브라질 선교지를 둘러본 뒤 귀국하면 목회자도 없고, 성도라고는 노인들 몇뿐인 시골 교회로 가서 섬기려고 한다.”

 

“아니, 아버지,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전에 잠깐 말했지 않았니? 어느 평신도 사역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분 때문에 내 인생이 비로소 그리스도께 인도받았다. 어거스틴 말이 맞았어.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 된다고 했지 않니.”

 

“설마, 그 평신도 사역자에게 교회를 맡길 생각이세요?”

“그렇다.”

“아버지. 그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어떻게 평신도에게 교회를 맡긴단 말입니까? 아버지는 그렇다 치고 장로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성도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을 거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시행할 것이다.”

 

“아버지, 솔직히 하나님이 그 일을 원하시는지 그렇지 않은지 어떻게 압니까?”

“잘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하시는 말씀마다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문제는 우리가 목사인데도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솔직하게 그걸 인정해야 할 것 같구나.”

 

“아버지, 좀 쉽게 말씀해주세요. 아버지가 교회를 평신도 사역자에게 맡기고, 목회 나머지 기간을 시골에 가서 조용히 보내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마도 그런 것 같다.”

 

“그것도 아버지 생각이시잖아요. 사실 하나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렇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목사라고,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큰소리치지만 주님의 뜻을 모른다는 데 있다.”

 

“그 평신도 사역자가 아버지더러 그러라고 하던가요? 그 사람은 하나님께 직통 계시라도 받는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 뜻에 모두 합당했다. 그는 나에게 어떤 결정을 내리라고 말한 적이 없고, 교회를 맡겠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가끔 은사가 크게 나타나는 성도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런 분들은 신학적 바탕이 없어서…….”

“그런 편견은 버려라. 신학 지식보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다만 대부분의 은사자들이 하나님을 만난 경험만으로 사역을 하다가 실패할 뿐이다. 성경에 비추어 사역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 사람은 달랐다. 무엇보다 먼저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살고 있다. 그것은 성령이 가르치신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니까.”

 

“그래서 정말 그에게 교회를 맡기고, 아버지는 시골에서 쓸쓸하게 은퇴하시겠다는 말씀이세요?”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내가 화려한 은퇴식을 하고, 원로 목사가 되어 계속 해서 권력을 휘두른다면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도를 무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 갑자기 그렇게 극단적으로 변하셨어요. 아예 수도원 같은데 들어가셔서 여생을 마치겠다고 하세요.”

“이 시대에도 몸과 영혼을 의탁할 만한 진짜 수도원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아버지, 아버지가 그렇게 하신다고 이제까지의 목회생활이 무효화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몇 년 그렇게 하신다고 뭐가 바뀌겠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하시는 것은 상징적인 모습일 따름이에요. 아버지가 걸어오신 길과는 전혀 달라요. 말년에 몇 년 그렇게 수도사처럼 사신다고 역사가 뒤바뀌는 것도 아니고, 또 아버지가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왜 시골까지 가서 고행을 사서 하신단 말입니까.”

“내가 죄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수도나 고행하려고 시골에 내려가는 건 아니다. 몇 만 명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나 노인분들 몇 모시고 예배하는 것이나 주님 앞에서는 같다. 이제 목회를 대형교회가 아닌 시골이나 섬에서 하려고 할 뿐이다. 남들이 마다하는 곳에 가서 주님의 뜻에 맞는 목회를 하고 싶구나.”

 

“아버지, 꼭 가시려거든 제대로 은퇴하시고 그렇게 하세요. 은퇴하신 분들이 많이들 그렇게 하시잖아요.”

“은퇴하면 목사가 아니다. 목사는 은퇴하면 성도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내가 1년이라도 목사일 때 시골교회로 파송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골교회라도 현직 목사로 가야 한다.”

 

“아버지, 섬 같은 데는 3년 단독 목회하고 목사 안수 받을 젊은 친구들한테 가라고 하세요. 요즘은 신학교 졸업생들은 많은데 갈 데가 없어서 야단이라잖아요. 가서 경험도 쌓고, 그런 데서는 별로 할 일도 없으니까 성경도 많이 보고, 기도도 충분히 할 수 있잖습니까. 그러니까 아버지는 그냥 여기 계세요.”

“시골 교회일수록 나 같은 나이든 목사가 가서, 노인들과 형제처럼 지내면서, 같이 늙어가면서 함께 주님 앞으로 가야 한다. 천국 가는 길동무들이지.”

 

“아버지, 교회는 어디에 있든 다 같다고 하셨죠? 서울이나 섬이나 같으면 그냥 하시던 대로 하세요. 다 같은데 굳이 바꿀 것은 없잖아요. 어머니 생각도 하셔야죠.”

“네 어머니는 나와 한 몸이다. 남편이 가는 길이라면 함께할 거다.”

 

“어머니는 그동안 고생할 만큼 하셨잖아요. 이제 와서 시골 섬으로 가시겠다니…….”

“하나님은 지금 내게 믿음을 보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3년뿐이다. 그게 아쉬울 뿐이야. 내게 사력을 다할 시간이 더 없다는 게 안타까워. 그래, 너는 어떠냐?”

 

“네? 저요? 제가 뭘요. 저는 제 교회에서 목회 잘하고 있습니다.”

“네 교회가 아니라 주의 교회다.”

 

“저도 알아요. 그런데 늘 그렇게 말해왔잖아요.”

“그럼 이제 말부터 바꿔라. 너는 목회할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으니까.”

 

“네, 잘할게요. 나보고도 어디 시골 가서 목회하라는 말씀만 하지 않으시면…….”

“사실 그 말을 하러 왔다.”

 

“네? 무슨 말씀을요?”

“네 말대로 나는 3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년에 노망이 나서 그렇다거나 기껏 몇 년 그러는 것은 상징적인 제스처일 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그러나 네가 나와 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네? 아버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너도 곧 안식년을 맞을 것이다. 그때부터 작고, 낮은 곳에서 주를 섬겼으면 한다.”

 

“아버지 정말 제정신이세요?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말씀이 좀 지나치시잖아요.”

“그래, 지나치다. 나는 지나칠 정도로 주 앞에서 온전해지고 싶다.”

 

“혼자서 래디컬하시는 게 모자라, 래디칼 투게더 하시자는 겁니까.”

“래디컬보다 더 래디컬하고 싶다. 내게 인생이 조금만 더 남았더라도.”

 

“아버지. 그만 하세요. 아니, 지금 나더러 다시 개척이라도 하라는 겁니까. 요즘 개척 안 된다는 것 아시잖아요. 그렇다고 아버지처럼 섬에 가서 어떻게 합니까. 애들도 커 가는데 교육도 그렇고. 요즘 애들 서울 살다가 시골에 적응 못해요. 아니, 도대체 이런 생각은 왜 하신 거예요? 그 평신도 사역자 내가 한 번 만나서 따져봐야지, 원.”

“내가 원하는 것도 그거다. 제발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렴.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진리대로 살아왔는지 아니면 얼마나 하나님을 망령되이 여겼는지.”

 

“아버지, 제발…….”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없이 소파에 기대 앉아 있었다.

 

아들은 한 번도 아버지의 말을 거역해본 적이 없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 적이 없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목회를 권했으나 뜻한 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둘째인 그가 스스로 나서서 목회의 길을 걸음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않았는가. 아버지는 그에게 목회를 강요한 적 없었지만 목회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고 믿었다.

 

그는 여기서 끝인 줄 알았다. 아버지를 섬김으로써 하나님 아버지도 자동적으로 섬길 수 있었고, 그것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서 대를 이어 충성하고 있는데 지금에 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를 두고 시골에 가서 목회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는가.

 

“아버지, 저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명령하시기 전에는 오늘 아버지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아버지가 교회를 버리고 시골로 가시는 것도 반댑니다.”

“아들아. 하나님이 네 아버지이시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아들을 잠시 맡은 청지기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도 나를 사랑하니?”

 

“아버지를 사랑하니까 아버지 뒤를 따라 목사가 된 것 아닙니까.”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마지막으로 내 말을 따라주기 바란다. 우리는 그동안 주의 교회를 내 교회라고 생각하면서 주의 일을 하면서 동시에 나의 일, 그러니까 내가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을 동시에 추구해왔다. 주의 일을 하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주의 교회를 내 교회로 만듦으로써 내가 자의적으로 얻은 것이다. 이제 주님의 교회를 주께 돌려드려야 한다. 아들아, 아버지의 것이 네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주시지 않는 한 그것은 네 것이 아니다. 만약 네가 아버지의 것을 가로챈다면 너는 영원히 아버지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의 것은 상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교회를 내 교회로 삼는다면 우리는 교회라는 사업체를 얻을지 몰라도 그리스도를 잃게 될 것이다. 천국에는 교회가 없다. 이 땅의 교회는 한시적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한다. 천국은 미래에 도래할 물리적인 공간일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지금 이 땅에서 완성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혼례를 치를 신부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아버지, 하지만…….”

“아들아. 주께서는 우리더러 열방의 민족들을 가르치고 제자로 삼으라고 했지 큰 교회를 운영하면서 잘 먹고 잘 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동안 우리는 주의 일을 하면서 우리의 배를 불렸다. 더 이상 이런 식의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모였으면 반드시 흩어져야 한다.

 

안디옥 교회는 담임 목사였던 바울과 바나바를 하나님의 일을 위해 열방으로 파송했다. 그것이 네가 안락한 이곳을 떠나 주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떠나야 할 이유다. 나는 네가 목회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주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렴. 진짜 주를 따름으로써 너와 내가 진짜 목회자의 길을 걸었으면 한다.”

 

“다른 생각 절대 하지 말고 한 교회에서 성실히 목회하라고 하신 분이 아버지십니다.”

“그래, 그러나 우리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너무 부유하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된 지 오래 되었다. 너도 느끼고 있지 않니? 부드럽고 거짓된 설교와 썩어빠진 제도만 남은 교회라고 너도 비판했잖니. 다른 교회는 다 썩었는데 우리 두 사람의 교회만 건강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니? 우리가 떠나야 한다. 그래야 개혁이 시작된다.”

 

“우리가 떠나면 그 자리를 또 다른 목회자가 차지하고, 여전히 교회는 그대로일 것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그 자리에 앉아서 그리스도 없는 교회와 같이 죽을 필요는 없다. 너와 나는 생명을 택해 떠나야 한다.”

 

“아버지…… 왜? 왜? 제발…….”

“미안하다. 너에게 시험거리를 던져주어서. 하지만 이게 우리가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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