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교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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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교회 (9)

by 브린니 2020. 8. 3.

OO 교회에서 저녁 예배를 드리고 그는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서 서재로 돌아왔다. 벌써 9시가 넘었다. 매일 같이 보던 서재의 공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수화기를 들었다.

 

“총회장, 나 김영수 목살세.”

“아, 선배님. 어쩐 일로 주일 밤에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저녁 예배는 잘 마치셨습니까?”

총회장은 늘 그렇듯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도 외부에서 강사가 오셔서 섬겨주셨지.”

김 목사는 자신이 한 달째 다른 교회에서 저녁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네, 요즘 후계자 고르시느라 여념이 없으시죠?”

“후계자라니 그냥 안식년 동안 섬길 분을 모시려고 할 뿐이지.”

 

“아무리 그렇다고 말씀하셔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걸요. 사실 선배님도 후계자를 고르고 계신 것 맞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내 후임을 주님께서 이미 정해놓으셨을 거라고 믿네. 물론 안식년에  섬길 분도 다 예비하셨을 거야."

“목사님, 오늘 저녁예배 때 은혜가 넘친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두지.”

 

“그런데 전화주신 특별한 이유라도…….”

“요즘 내가 목회를 정리하면서 꼭 해야 할 것이 생각나서 말이야.”

 

“뭔데 그러십니까? 말씀하세요.”

“그래, 우리 총회 차원에서 세상 앞에 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러니까 우리 총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방 받을 만한 일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것일세. 우리 총회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세상 앞에서 목회자들의 죄를 인정하고, 그런 잘못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을 하거나 후속조치를 취하는 것이지.”

 

“비방거리라면……?”

“교회 세습, 총회장 선거 부정이나 목회자들의 성적인 죄, 교회 재정의 투명하지 못한 사용이나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들 모두 말일세.”

 

“네, 그런 것을 회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조용히 자숙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요즘은 큰 사건도 없는데 자청해서 그런 것들을 다시 꺼내 화를 자초하지나 않을지. 괜히 불씨를 뒤집어써서 큰불을 낼까 걱정입니다.”

“총회장 말씀도 충분히 이해하네. 그렇지만 그동안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우리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회개한 적이 없네.”

 

“하나님이 다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을 우리가 다시……”

“그러나 우리의 죄는 세상을 향해서도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이 있고, 사회의 귀감이 되어야 할 성직자들의 타락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다시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던 터라 과거를 다시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일들 때문에 전도 길도 완전히 막혔는데 우리가 새삼스럽게 치부를 들추면 전도가 더 어려워질 것 아닙니까. 요즘 우리 교회들이 겪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선배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더더욱 죄를 고백하고, 죄의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네.”

 

“물론 원칙은 맞습니다만 사람들이 우리가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 이벤트는 이벤트지. 사건이야. 교회는 그 자체로 사건이라고. 교회는 탄생할 때부터 그랬다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 자체가 인류 최고의 사건이자 스캔들이 아니었던가.”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이 친히 말씀하시는데 따를 수밖에요. 그래 제가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내가 말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해주게.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는 미쁘사…….”

 

“네, 네. 좋습니다. 어떤 조치를 원하십니까.”

“총회를 소집하고 총회장이 나서서 공개적으로 회개문을 발표하는 걸세.”

 

“기자들도 불러 모으고요?”

“일부러 부를 것은 없지만 간단한 보도 자료를 돌렸으면 하네. 세상을 향한 것이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야지. 우리가 세상을 향해 죄를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더 이상 교회는 설 자리를 잃게 될 걸세.”

 

“네, 알겠습니다. 십자군 운동도 회개하고, 식민지 개척도 회개하고, 유태인 학살도 회개해야죠. 일제 때 신사 참배한 것도 회개하고, 민주화 투쟁 기간 동안 침묵한 것도 회개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배만 불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회개하고요.”

“그래. 그런 것도 역사 앞에서 회개해야 할 목록이지.”

 

“선배님과 제가 이런 문제로 신학교 기숙사 옥상에서 밤새 토론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래, 그때 우리는 정말 순수했고, 그리스도밖에 몰랐지.”

 

“저는 그때부터 선배님 말이라면 무조건 따랐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일 걸세. 이제 총회장 혼자서 그리스도를 만나 직접 그분께 물어보시게. 무엇이 우리의 신앙과 사역과 삶의 올바른 길인지 주께 물어보시게나.”

 

“네, 그러겠습니다. 목사님.”

“그럼 다음 단계는 오목사가 알아서 맡아주시게.”

“네, 편히 주무십시오.”

 

김영수 목사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렸다. 총회장 오 목사와 같은 믿음의 동역자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 목사는 신학을 공부할 때부터 그의 친구이자 멘토였다. 늘 선배의 말을 따랐지만 오 목사야말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늘 그를 앞서 갔다. 개척하고 만 명이 넘자 더 이상 교회를 확장하지 않고 미자립 교회를 돕고, 함께 교회를 섬기던 부교역자들이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와 같은 목회자를 곁에서 본다는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오목사도 교회에서만큼은 엄한 지도자라는 소문이 있는 걸 보면 교회가 그의 왕국이며, 그도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머리 노릇을 하고 있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언제 다시 좋은 기회에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 목사와 전화를 하고 난 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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