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1)
본문 바로가기
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1)

by 브린니 2020. 8. 9.

진짜 교회 11

 

 

 

6. 2 돈에 대하여

 

부활절을 앞둔 금요일 밤 기도회 시간이었다. 김영수 목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단에 섰다.

“오늘은 설교를 단 아래로 가서 하려고 합니다.”

그는 단을 내려와 성도들이 앉아 있는 곳 가까이까지 와서 섰다.

 

“저는 성도의 한 사람으로서 여기 서서 성도님들과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설교하고 여러분이 듣기만 하는 것은 이제 생명력이 없습니다. 말씀을 나누면서 은혜를 나누고 삶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질문이 있거나 말씀하실 게 있으신 분은 언제든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김영수 목사는 성도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이라 낯설겠지만 곧 익숙해지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말씀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십일조 내는 것이 부담되시는 분 있으세요? 부담되시면 당분간 기도하시면서 십일조를 쉬셔도 됩니다.”

 

성도들이 술렁거렸다. 장로들은 기침을 해댔다.

 

“레위기 27:32에는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의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양이 10마리가 안 된다면 어떻게 할까요? 10마리 있으면 1마리, 20마리 있으면 2마리를 바치면 되는데 10마리가 없는 7, 8마리 정도만 있거나 1, 2마리밖에 없으면 어떡할까요?”

 

성도들이 아까보다 더 술렁댔다. 장로들의 기침소리가 더 높아졌다.

 

“양 10마리 정도 있어야 먹고 살 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10마리도 없는 사람은 십일조를 엄격하게 내기보다는 신앙 양심에 따라 적절한 헌물을 구별하여 드렸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소득에 따라 자유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고, 기침소리를 끊이지 않았다.

 

“말라기 3:10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지 않을 거라고 겁을 내지 마십시오. 또 축복받을 목적으로 억지로, 부담을 갖고 내지도 마십시오.

 

신앙 양심에 따라 하십시오. 여러분이 적게 내든 많게 내든 주님께서 여러분의 속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축복받기 위해 마중물로 헌금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렇게 하셔서 축복받으시면 좋겠지만 일부러 마중물을 퍼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물질적인 축복이 오지 않으면 시험들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자신의 소득에 맞게 양심껏 십일조와 헌금을 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자유하십시오.”

 

성도들은 더 수근거렸고, 장로들은 거의 일어설 듯한 포즈를 취하면서 김영수 목사를 바라보았다.

 

“십일조와 헌금을 넘치게 내면 복 받고, 적게 내거나 안내면 축복 못 받는다는 생각을 이제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태양빛을 내려주시고, 비를 내리십니다. 그런데 하물며 성도들에게 조건부로 헌금 내면 축복, 안내면 저주를 내리시겠습니까? 자유하시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지하십시오. 들꽃도 먹이시고, 새들도 먹이십니다. 하물며 우리 성도들이겠습니까. 믿는 자들은 결코 주리지 않습니다.”

 

김영수 목사는 미소를 띠면서 계속 말씀을 나누었다.

 

“구약의 황금률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도 가까이 하시고,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돌려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종의 인과율, 조건부 계약입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인과율은 적용됩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은 사필귀정, 인과응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고 난 뒤에 이런 조건부 계약은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미 우리와 함께 계신데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나님도 우리와 가까이 하신다는 인과율이 적용될까요?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는데 굳이 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겠다고 나서야 할까요. 우리가 사는 것은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바치면 몇 배로 축복하셔서 의인들이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 마찬가지였고, 의인 욥도 엄청난 부를 얻었습니다. 선지자를 대접한 여인의 집에 떡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서를 보면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 사건은 많지 않고, 오히려 소유를 나누는 역사가 더 많이 나타납니다.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을 나누었을 때 예수님이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고넬료가 구제한 것을 주님께서 아셨습니다. 비단장수 다비다의 구제는 어떻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의 물질을 통용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국교회 초창기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물질적인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물질을 나누어야 할 때입니다. 초창기 한국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 더 이상 없습니다. 대부분 먹고 살 만합니다. 네, 하나님이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부자가 되었을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에 많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우리 성도들이 더 이상 축복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할 때입니다.

 

마태복음 6:20에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하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교회에 십일조와 헌금을 냅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 보물을 천국에 쌓는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그런데 그 보물이 정작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33을 보십시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배낭이 곧 보물입니다. 그런데 이 배낭은 어떻게 만듭니까? 십일조나 헌금을 해서 만들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만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기 소유를 팔아서 구제하면 배낭을 만들 수 있는데 이 배낭이 바로 천국에 쌓아둔 우리의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소유를 나누고 구제하면 하늘에 보물이 쌓인다는 말씀입니다. 이 배낭, 이 보물은 도둑이 들지도 않고 좀이 슬지도 않는 보물로서 천국에서 상급으로 여러분을 기다리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얼마나 온전했는지 그 배낭(보물)이 증명해 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뒤부터는 계약도, 법칙도,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인과율, 조건부 계약과 같은 율법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더 이상 율법에 매여서는 안 됩니다. 자유하십시오.

 

무조건 교회에 헌금 많이 내는 것이 축복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교회를 망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된 교회는 이제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바친 헌금을 교회 건물을 크게 세우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전 건축보다 중요한 것을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성전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 계시는데 눈에 보이는 성전을 멋지게 짓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를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전도 이상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말로 전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도하기 위해 물질을 약간 쓰는 것이 아니라(그것은 속이는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전도할 때 만원짜리 한 장을 무조건 드린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교회 나와 은혜를 받으면 몇 배로 헌금을 많이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것은 장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이 도적과 장사치의 소굴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소유를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목사인 저부터 나누는 일에 인색했음을 고백합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은 집을 팔아서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그 돈을 구제하는 일에 썼는데 나중에 보니 새로 산 집도 커서 또 반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저도 그분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사택은 교회에서 마련해주신 것이니 제가 퇴임하면 교회에서 반납하겠습니다. 저는 퇴임하더라도 원로목사니 명예목사니 그런 직함을 갖지 않겠습니다. 퇴임하면, 아니 그 전에라도 가능하다면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해외 선교를 나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성도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작은 교회를 섬기고자 합니다. 제가 그동안 은혜로 얻은 모든 것을 나누겠습니다. 나누는 것이 곧 축복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제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신실한 형제와 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돈을 사랑하며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축복이라고 믿는다면 유대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게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와 정의가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서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주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세상과 이웃을 죽기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입니다. 우리가 소유를 나누는 것은 어쩌면 아주 작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축복의 개념이 바뀌었음을 깨닫고 새로운 진짜 축복을 누리기 위해 힘씁시다. 그리스도를 나눕시다. 떡과 포도주이신 그리스도를 먹고, 이웃들과도 그리스도를 나눕시다."

 

 

김영수 목사가 설교를 마쳤지만 아무도 질문하거나 자기 의견을 말하는 성도가 없었다. 듣고 순종하는 데 길들여진 교인들은 감히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 들은 말씀은 심히 어려웠다. 마치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하셨던 말씀처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