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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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3)

by 브린니 2020. 8. 11.

진짜 교회 13

 

 

 

7. 2 진짜 목회자의 길

 

며느리가 방문을 반쯤 열어놓고 듣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십자가와 무관하게 살아왔다. 십자가의 구원은 외쳤지만 십자가의 고난은 외면했다. 우리는 십자가의 부활을 찬송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은 회피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은 옛사람을 부활시켜서 그리스도가 주신 새사람을 내쫓았다.

 

우리는 옛사람이 잘 사는 것을 두고 축복이라고 속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였으며, 동시에 우리가 먹이고 가르치는 양떼를 속였다.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했다. 그러나 진리의 빛이 비추면 이 모든 악들이 드러난다. 우리는 죽은 새사람을 되살리고, 옛사람과 함께 십자가에서 다시 죽어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아버지가 돌아간 뒤 김이레 목사는 한동안 고개를 젖힌 채 소파에 기대 앉아 있었다. 그는 이미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아버지에게서 들은 그 어떤 조언보다 오늘 급작스럽게 들은 비보와도 같은 말이 하나님의 뜻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그냥 아는 것이지 어떤 추론 과정을 거쳐서 논리적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그러나 그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하나님이 직접 이것이 자신의 뜻임을 증명해보이시기를 구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게도 동일한 감동을 주실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목회의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직접 들은 적은 거의 없지만 이토록 강렬한 메시지라면 하나님께서 분명 자신의 뜻을 친히 알리실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어막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했을 때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목사님, 왜 하나님은 목사님께만 말씀하시고, 제가 기도할 때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거죠? 아무튼 저도 기도해보고 알려드릴게요, 하면서 거부했던가. 그들 중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다며 뒤늦게 찾아와 순종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는가.

 

그는 아버지에게 이상한 말을 지껄여 아버지의 판단력을 흐려놓은 느헤미야라는 평신도 사역자를 직접 만나서 하나하나 따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말을 따를 때 따르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증거 없이는 결코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주와 함께하는 집은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다. 아버지가 거기까지 찾아가 그 사람에게 멘토링을 부탁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아내가 거실로 나와 김이레 목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역시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보, 정말 이제는 더 못해요.”

아내가 방에서 나와 그 앞에 서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김이레 목사가 아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뭐라고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저는 할 만큼 했어요. 몸도 약하고요. 다시 개척은 못해요.”

 

“아버지도 다시 개척을 하라고는 하지 않았어. 다만 이 교회를…….”

“도대체 아버님은 왜 그러시는 거예요? 당신이 아버지 교회를 물려받았다고 사람들이 뭐라고 한 게 어디 하루 이틀이에요? 그리고 요즘은 다 잠잠해졌잖아요. 당신도 잘 하고 있고. 뭐가 부족해서 다시 시작한단 말이에요. 애들 생각은 안 하시나요?”

 

“아이들과도 상의해봐야지. 우리 생각대로만 할 수는 없으니까.”

“네? 우리 생각대로요? 저는 분명히 못한다고 했어요. 당신 생각은 아버님과 같단 말이에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봐야지.”

“뭘 생각하겠다는 거예요. 안 된다고 하세요. 당신 나이도 이제 마흔이 넘었어요. 몇 년 더 젊었더라면 몰라도 마흔 넘어서 개척이라니요.”

 

“개척을 하는 건 아니라니까 그러네.”

“미자립 교회를 섬긴다는 게 개척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 말이 미자립 교회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게 뻔한데. 교인 몇 있으나 마나 할 텐데.”

 

“그동안 나도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 불리는 재미로 목회를 해왔던 것 같아. 사실 내가 목회자가 된 것은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려고 한 게 아니잖아. 나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격해서 내 전부를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목회자가 된 거야. 그런데 지금 내 꼴을 좀 봐.”

 

“당신 꼴이 어때서요. 자랑스럽기만 한데요. 당신은 그리스도께 충성했어요. 그래서 교회도 이만큼 커지고 안정되었어요. 새 성전도 곧 봉헌할 거고, 당신 밑에서 배운 교역자들은 또 얼마나 많아요? 선교사로 헌신한 분들도 정말 많아요. 예수님도 당신을 기쁘게 생각하실 거에요.”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 것은 내가 공적을 많이 세웠기 때문이 아니야. 죄인이었던 내가 주께 돌아와 내 삶을 드렸기 때문이지.”

 

“그게 그거잖아요. 당신은 인생 전부를 드려서 주께 헌신했어요. 주님이 이제 당신에게 더 헌신하라고 요구하시지는 않을 거예요. 저도 할 만큼 했고요.”

“주님이 나에게 뭘 더 요구하시는 게 아니야. 내가 정말 주님께 헌신했는지 고민할 뿐이야. 나는 목회의 성공을 일했지, 정말 그리스도께 충성한 것이 아닌 것 같아.”

 

“아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신만큼 충성한 목사가 또 있나 나와 보라고 하세요.”

김이레 목사가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는 고개를 돌리고 일어섰다.

“뭐, 아버님도 계시고, 큰 교회 목사님들도 있지만…… 그래도 당신도 빠지지 않아요. 신유 능력도 있고…… 또…….”

 

아내는 냉장고를 열더니 찬거리를 꺼내 싱크대 앞으로 갔다. 도마와 칼을 꺼내 큰소리를 내며 야채를 썰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아무튼 저는 더는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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