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힘들게 하는 TMI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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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자녀교육

아이를 힘들게 하는 TMI 교육

by 브린니 2020. 5. 30.

어릴 적 한글 떼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좀 똑똑하다 소리를 들으며 자란 사람은 누가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는 경우도 있고, 학교 들어갈 때까지 한글을 떼지 못해 꿀밤을 많이 맞았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대개 집에서 부모나 조부모에 의해 조금씩 배우다가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에 읽기 쓰기가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글 교육이 가정에서 전문업체로 넘어가게 되었고, 아이 한글 떼기가 하나의 사교육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엄마들은 굳이 아이를 직접 가르치면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느니 전문업체에 한글 교육을 맡기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전문업체의 교재와 교사를 만나 쉽게 배우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도리어 짜증만 내고 하기 싫어합니다. 그러면 엄마는 아이에게 맞는 다른 업체를 찾아보고 다른 교사를 찾습니다.

 

그렇게 두어 군데 돌다보면 엄마는 아이의 지능에 대해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엄마의 불안을 눈치 챈 아이는 은근히 엄마와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대여섯 살짜리 아이도 엄마와 감정적인 한판 승부를 벌이곤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해 두해가 가면서 초등학교 들어갈 시기는 다가오고, 주변에서 한글을 뗀 똘똘한 아이들이 글자를 줄줄 읽는 것을 보기 시작하면 더욱 조급해진 엄마는 아이에게 한글 공부를 해야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는 이렇게 외칩니다. “나 공부 안 해. 나 빵점 맞을 거야. 나 바보될 거야.”

 

이 정도 되면 아이는 칭찬을 받아도 화를 냅니다. 그 칭찬이 자기를 더 공부시키기 위한 당근이라는 것을 여러 교사를 거치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해주면 도리어 그게 뭐 잘한 거라고 칭찬을 하냐고 아이가 화를 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에 갈 시기가 되면 엄마들은 혹시나 학교에서 아이가 너무 처질까봐 걱정이 되어 동네 공부방의 문을 두드립니다. 공부방에는 예비 초등학생부터 초등 6학년까지 많은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공부방에 입장한 아이는 이제 기나긴 공부의 터널 속으로 첫 발을 내디딥니다.

 

아이는 한글을 읽고 쓰기 위한 여러 가지 규칙들을 배웁니다. 낱말을 완벽하게 쓸 수 있을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따라 쓰기도 하고, 규칙에 맞게 조사를 붙이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한글 규칙들이 떠돌아다닙니다.

 

어느날 아이는 글을 쓰면서 “아이가 모자을 쓰고 걸어가요.”라고 씁니다. 또 “아이가 공를 차요.”라고 씁니다.

 

그저 발음 나는 대로 자연스럽게 “모자를”이라고 쓰고, “공을”이라고 쓰면 되는데, 왜 굳이 발음도 이상한 “모자을” “공를” 이라고 쓸까요? 아이는 뭔가 규칙을 배웠고, 그 규칙을 적용해 쓰기 위해 노력하는데, 문제는 규칙들이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발음과 규칙의 차이가 헷갈리고, 그동안 여러 교사를 거쳐야 할 만큼 잘 못하는 자기 실력을 못 믿어 자신감이 없어서 고민 끝에 자기가 틀렸겠지, 라고 생각하며 ‘을’이라고 생각될 때 ‘를’을 쓰고, ‘를’이라고 생각될 때 ‘을’을 씁니다.

 

선생님은 또 틀렸다고 지적을 합니다. 아이는 ‘나는 역시 못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은 정말 어렵고, 공부는 정말 하기 싫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라니...... 아직 공부는 시작도 안했는데, 겨우 한글 떼기를 하면서 공부가 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일들 속에서 전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전문가는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하고, 수많은 규칙과 전문적 지식을 알려줍니다.

 

그 전문적 지식이 우리를 더 나은 생활로 인도하고 풍요롭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Too Much Information이 되어 더 힘들게 합니다.

 

아이에게 더 나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다는 엄마의 열망은 언제나 아이에게 양날의 검입니다. 그것이 아이를 발전시킨다면 다행이지만, 아이를 더 헷갈리게 하고 힘들게 한다면 더 나은 교육이 아니라 더 나쁜 교육이 되고 맙니다.

 

차라리 비전문가인 엄마와 아빠가 아이에겐 더 좋은 선생님일 수 있습니다. 함께 TV를 보다가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함께 음식점에 들어갔다가 눈에 보이는 한 글자 한 글자를 이야기해주는 게 더 좋은 가르침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 이름과 똑같은 글자가 나오면 환호성을 지르며 이 글자가 나왔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일 때 아이에게 한글은 즐거운 것이 됩니다.

 

조금 틀리더라도 일단은 발음 나는 대로 쓸 수 있도록 가만히 두는 게 더 나을지 모릅니다. 더 빨리 배우게 하기 위한 규칙 전달은 아이를 힘들게 하는 TMI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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