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의견, 어디까지 들어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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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자녀교육

아이의 의견, 어디까지 들어줘야 할까

by 브린니 2020. 5. 28.

요즘 아파트 단지 놀이터를 보면, 젊은 아빠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TV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영향과 여성들의 사회진출 욕구가 강해진 탓에 육아에 신경을 쓰는 아빠들이 늘어나는 있는 추세입니다.

 

물론 바람직한 현상이긴 하지만, 동시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빠가 엄마처럼 다정하고 아이의 욕구에 즉각 반응해 주는 것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슈퍼에고로 자리잡을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입니다.

 

마치 엄마에게 하듯이 아빠에게도 떼를 쓰고 당연히 아빠가 져줄 거라고, 경험을 통해 익히 아는 아이들은 막무가내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기 쉽습니다.

 

슈퍼에고는 인간에게 꼭 지켜야할 도덕과 윤리, 질서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욕망과 충동을 조절하는 ‘절제’의 미덕 또한 가르쳐줍니다.

 

최근 10대 초반 아이들의 잔인한 폭력 사건들을 접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가정적인 아빠와 아이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엄마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마음껏 내놓고 서로 협의하는 민주적 태도를 배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며, 이 과정에서 성숙한 인격과 멘탈을 가진 젊은이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젊은 운동선수들을 보면, 밝게 웃고 웬만해선 흔들리지는 않는 멘탈을 자랑하며 유머감각까지 출중하여 연예인 못지않은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봅니다. 사랑받고 존중받고 인정받고 자란 젊은이들은 역시 웃는 모습에서부터 티가 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슈퍼에고의 지도력이 있음을 봅니다. 김연아에게는 강한 어머니가 있었고, 손흥민에게는 지도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녀의 재능과 의견을 존중하여 자녀가 원하는 길로 갈 수 있도록 지지해주지만, 그들이 힘든 훈련과 슬럼프에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는 절대로 그만두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스케이트를 타겠다는 의견, 축구를 하겠다는 의견은 들어주었으면서, 그만두겠다는 의견은 왜 안 들어주었을까요?

 

김연아 선수의 어렸을 적 인터뷰에서 기자가 지금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을 때 어린 김연아는 아주 짜증스러운 얼굴로 “스케이트 안 타는 거요.”라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것을 계속 시킨 엄마가 지독하게 보입니다. 지독한 엄마 밑에서 지독하게 훈련하여 저렇게 된 건가 싶기도 합니다.

 

김연아 선수 어머니의 육아 기록을 담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는 아이가 스스로 말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말하는 것을 가르쳐주면 됩니다.”

 

어느 순간 김연아는 스케이트를 타기 싫다고 했는데, 김연아 엄마는 왜 계속 ‘타고 싶다’고 들은 걸까요? 거기에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의 의견을 들어줄 때와 안 들어줄 때를 알아야 합니다. 김연아는 분명히 처음에 스케이트를 좋아해서 “나 저거 탈래”라고 말했기 때문에 엄마가 허락해 준 것입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주 재밌게 신나게 탔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훈련에 지쳐 그만두고 싶어진 것입니다. 이쯤에 부모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재미로 타는 것과 그것을 인생으로 삼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피나는 고통과 노력이 수반됩니다. 아이는 그것이 힘들어집니다.

 

이때 부모는 아이와 함께 그 고통을 건너야 합니다.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도 아프지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네가 힘든 건 알지만, 네가 힘들 때마다 차라리 내가 힘들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아프지만, 나는 네가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단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을 거야. 그 고통이 너를 키울 테니까.’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을 때를 아는 것입니다. 고통의 바다를 건너 승리로 나아가는 일을 이끌어주는 슈퍼에고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슈퍼에고를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보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혹은 둘 다든 아이에게 엄하고 단호한 모습을 때로는 보일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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