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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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by 브린니 2020. 8. 5.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복음 11장 27절)

 

세상 누가 과연 하나님이모든 것을 내게 주셨다 말할 있을까요? 단언 마디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본성적으로 하나님 자신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관한 전적인 통치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진리에 관련된 모든 것과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 등을 포괄합니다.

 

여기에서주셨으니라는 말의 원어는파레도데 무시간(無時間) 부정 과거형 취하고 있어 이미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성자 예수님께 모든 것들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땅에 오시기 이전부터 역사적 시간성을 뛰어넘어 이미 계셨음을 증거해 주는 구절입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라는 뜻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관계가 인격적으로 일체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아는 해당하는 원어는에피기노스케이 단순히 지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이고 초월적인 , 완전한 상태의 지식을 뜻합니다.

 

이렇게 완전히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인간적인 의미의 아버지와 아들이라면 서로 모르는 것이 많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의 서로 앎은 완전한 것으로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에서소원대로라는 말의 원어는부레타이 ‘… 하기 원하는이라는 강한 의지적 소망을 담고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인간에게 계시해 주시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강한 의지대로계시를 받은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본질적인 형상으로서 예수님 자신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강한 의지대로 계시를 받은 자는 특수한 명에 불과할까요? 흔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처럼 특별한 부르심을 받아야만 하나님에 관한 계시를 받을 있다고 생각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성도로서의 부르심과 계시를 받는 자로서의 부르심이 다른 것으로 인식해 왔기에 설교나 축도, 안수기도 등의 특별한 일들은 반드시 특별한 몇몇 사람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때때로 간증을 통해서 특별한 부르심의 체험에 대해서 설파하는 부흥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생겨나면서 특별하고 신비한 이적을 통한 신앙의 쇄신보다는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된 일상을 실천하면서 보다 생활에 가까운 실제적 신앙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데에는 예배 현장에서의 놀라운 체험과 감격에 비해 실제 삶에서제자된 행동으로 살지 못한다는 간극이 너무 컸다는 사실도 배제할 없습니다.

 

흔히 부흥회나 집회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다가도 작심삼일처럼 다시 은혜 떨어졌다고 사람으로 돌아가고, 그러면 다시 집회를 찾고 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진짜 지속가능한 은혜란 무엇이며,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놀라운 이적과 은혜의 통로가 많은 지도자들이 실제 삶에서 타락한 모습을 보여 낯부끄러운 뉴스로 세상을 실망시킨 일들이 반복된 사례들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소원대로 계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원을 우리는 결코 모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기를 원하셨고, 악을 선으로 갚기 원하셨으며, 죄인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자신을 내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원대로 행하는 자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진리의 계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원대로 행하지 않는 , 설사 한때 은혜가 있어 지도자의 자리에 서있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재적으로 예수님의 소원대로 행하지 않는 자에게 과연 계시가 주어질까요?

 

우리에게는 기억력이라는 힘이 있어서 현재 예수님의 소원대로 살고 있지 않아도 과거에 누렸던 은혜의 기억을 가지고 현재적으로도 자신이 은혜 안에 있다고 착각하는 함정에 빠질 있는 같습니다.

 

오늘은 오늘의 새로운 계시가 필요합니다. 과거에 알았던 하나님에 관한 진리는, 오늘도 내가 안에 있다는 것을 확증해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같습니다. 과연 오늘 나는 예수님의 소원대로 예수님이 사신 삶의 모범을 따라가고 있는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걸음 걸음 걸어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계시가 없이는 오늘 나의 삶은 무가치하며, 어쩌면, 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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