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기택 <먹자골목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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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기택 <먹자골목을 지나며>

by 브린니 2020. 8. 3.

먹자골목을 지나며

 

 

먹자골목을 지나는 퇴근길

돼지갈비 냄새가 거리에 가득하다

냄새를 맡자마자 어서 핥으려고

입과 배에서 침과 위산이 부리나케 나온다

죽은 살이 타는 냄새임이 분명할 텐데

왜 이렇게 달콤할까

이것은 죽음의 냄새가 아니고 삶의 냄새란 말인가

필시 그 죽음에는 오랫동안 떨던 불안과

일순간에 지나온 극도의 공포가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냄새에는 그런 기미가 전혀 없다

오로지 감칠맛나기만 해서 천연덕스럽고 뻔뻔스럽다

정말 이것이 죽음의 맛일까

비리고 고약한 냄새인데

혀와 위장이 잠시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죽음을 품어 아름다워지고 풍요해진 산처럼

한몸 속에 삶과 죽음을 섞어놓으려고

서로 한 곳에서 살며 화해하게 하려고

혀와 위장을 맛의 환각에 홀리게 한 건 아닐까

지글지글 타고 있는 것이 고기이건 시체이건

돼지갈비, 그 환각의 맛과 냄새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먹자골목

 

                                                    ―김기택

 

 

【산책】

비오는 날이면 구수하고 얼큰하고 속이 확 풀리는 것을 찾는다.

그 가운데 돼지갈비를 놓고 소주 한잔 곁들이는 것도 제 맛일 것이다.

 

퇴근길에 아직 집은 걸어서 좀 먼데

먹자골목을 지나야 한다면?

 

행복이라기보다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침이 고이다 못해 위산이 치밀어 오른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행복한 배고픔, 행복한 먹고 싶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면?

 

다리는 천근만근인데 인도까지 점령하고 고기를 굽는 사람들이 있다.

집까지 가지 말고 여기서 돼지고지 한 점 소주 한 잔이며 속이 확 풀리고

스트레스도 확 달아날 것 같다.

집에 가면 직장에서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나 계속 걸어 집으로 향한다.

이런 경험 한번쯤은,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이 있을 것이다.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다 못해 통각까지 자극하는 맛과 소리와 냄새의 향연.

먹자골목은 나그네들의 발목을 붙잡는 시험의 공간이다.

 

먹는 것은 즐거움이면서 동시에 일종의 고통이다.

먹는 것이 오히려 만병의 근원일 수도 있다.

 

잘 먹어서 살이 찌면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비만과 전쟁을 치르기도 한다.

비만은 성인병의 원인이어서 그냥 둘 수 없다.

 

살이 쪄서 좋은 것은 가축들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그저 먹고 배부를 수만은 없다.

 

먹자골목은 먹고자 하는 욕망과 싸우는, 내장을 비트는 전쟁터.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돼지의 생과 죽음 앞에 묵념을 하자!

돼지의 시신을 섭취하고 비만에 걸리지 않은 나 자신을 격려하자!

 

그러나 내일도 이런 전쟁을 치르자면 피곤할 테니

여기 자리에 앉아 돼지갈비 한 점 뜯고 가시게나.

얼씨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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