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양 떼를 지키는 사람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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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페르난두 페소아 <양 떼를 지키는 사람 (21) >

by 브린니 2020. 8. 1.

양 떼를 지키는 사람*

 

                                       알베르투 카에이루*

 

21

내가 이 지구 전체를 깨물 수 있다면

그래서 어떤 맛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지구가 깨물 수 있는 무언가라면,

한순간은 더 행복할 텐데……

하지만 내가 항상 행복해지길 원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불행할 필요가 있다

자연다우려면……

모든 날이 해 뜬 날은 아니니,

비도 많이 부족할 때면, 내리기를 바라는 법.

그래서 나는 행복과 함께 불행도 취한다

마치 산과 평원과

바위와 초목의 존재가

낯설지 않은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연스럽고 편안해지는 것

행복할 때든 불행할 때든

보는 것처럼 느끼는 것,

걷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기억하는 것, 하루도 죽는다는 걸,

노을이 아름답고, 남는 밤도 아름답다는 걸……

그런 거라면,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포르투갈, 1888-1935)

 

* 양 떼를 지키는 사람 : 49개의 시들로 묶인 한 편의 시

* 알베르투 카에이루: 페르난두 페소아의 수많은 필명 가운데 하나

 

 

【산책】

자연스럽다는 것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항상 즐겁고 좋은 것이 아니라

약간의 불행, 너무 불행해서는 안 된다.

행복감도 늘 느끼는 것이 아니니까.

 

장마 때는 비가 넘치지만 가뭄에는 목이 탄다.

노을이 예쁘다면 밤의 어둠은 짙고 깊다.

 

음과 양,

비와 햇빛,

낮과 밤,

반대편의 것들 사이에 중간의 것들도 있다.

보랏빛,

구름들, 바람들.

저녁,

연두.

 

자연스럽다는 것은 죽음이 삶 속에 들어 있다는 것.

하루도 하루가 끝나는 시간에 죽는다는 것.

오늘이 죽고 내일이 태어난다는 것.

 

그러나 저러나

지구를 깨물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하게 되는 걸까?

그리고 지구를 깨물면 행복할까?

지구를 깨물어 먹는 괴물이 된 느낌 아닐까?

 

지구의 맛, 어떤 맛일까?

행복한 맛!

지구에 살기, 매우 행복한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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