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행숙 <숲속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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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행숙 <숲속의 키스>

by 브린니 2020. 8. 1.

숲속의 키스

 

 

두 개의 목이

두 개의 기둥처럼 집과 공간을 만들 때

창문이 열리고

불꽃처럼 손이 화라락 날아오를 때

두 사람은 나무처럼 서 있고

나무는 사람들처럼 걷고, 빨리 걸을 때

두 개의 목이 기울어질 때

키스는 가볍고

가볍게 나뭇잎을 떠나는 물방울, 더 큰 물방울들이

숲의 냄새를 터뜨릴 때

두 개의 목이 서로의 얼굴을 바꿔 얹을 때

내 얼굴이 너의 목에서 돋아나왔을 때

―김행숙

 

 

【산책】

사랑을 할 때

너의 몸이 나의 몸과 겹쳐

다른 몸이 될 때

 

사랑을 할 때

너의 얼굴이 나의 얼굴을 덮어

아수라의 얼굴이 될 때

 

사랑을 할 때

너의 위장이 나의 대장과 꼬여

안과 밖에 뒤바뀔 때

 

사랑을 할 때

뫼비우스의 띠처럼

사랑과 죽음이 한 실타래로 넘나들 때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고

두 개를 하나라고 느낄 때

 

무서움과 두려움이 뒤엉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언제 끝날지 모를 사랑의 엑스터시

 

끝이 오기 전에 서둘러 끝을 맺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온 종일, 밤새, 그리움.

 

사랑을 할 때 가끔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를 잃어버리는 미친 사랑에 빠지면

몸도 마음도 딴 세상으로 가고

나는 텅 빈 채 여기 남아 있다.

 

그래서 가끔 사랑을 고독하고……

남는 것은 숲속에서의 키스.

 

두 개의 목이 서로의 얼굴을 바꿔 얹을 때

내 얼굴이 너의 목에서 돋아나왔을 때

 

추억으로 떨어지는

초록의 물방울, 물방울들.

 

가볍게 나뭇잎을 떠나는 물방울, 더 큰 물방울들이

숲의 냄새를 터뜨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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