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키스
두 개의 목이
두 개의 기둥처럼 집과 공간을 만들 때
창문이 열리고
불꽃처럼 손이 화라락 날아오를 때
두 사람은 나무처럼 서 있고
나무는 사람들처럼 걷고, 빨리 걸을 때
두 개의 목이 기울어질 때
키스는 가볍고
가볍게 나뭇잎을 떠나는 물방울, 더 큰 물방울들이
숲의 냄새를 터뜨릴 때
두 개의 목이 서로의 얼굴을 바꿔 얹을 때
내 얼굴이 너의 목에서 돋아나왔을 때
―김행숙
【산책】
사랑을 할 때
너의 몸이 나의 몸과 겹쳐
다른 몸이 될 때
사랑을 할 때
너의 얼굴이 나의 얼굴을 덮어
아수라의 얼굴이 될 때
사랑을 할 때
너의 위장이 나의 대장과 꼬여
안과 밖에 뒤바뀔 때
사랑을 할 때
뫼비우스의 띠처럼
사랑과 죽음이 한 실타래로 넘나들 때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고
두 개를 하나라고 느낄 때
무서움과 두려움이 뒤엉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언제 끝날지 모를 사랑의 엑스터시
끝이 오기 전에 서둘러 끝을 맺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온 종일, 밤새, 그리움.
사랑을 할 때 가끔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나를 잃어버리는 미친 사랑에 빠지면
몸도 마음도 딴 세상으로 가고
나는 텅 빈 채 여기 남아 있다.
그래서 가끔 사랑을 고독하고……
남는 것은 숲속에서의 키스.
두 개의 목이 서로의 얼굴을 바꿔 얹을 때
내 얼굴이 너의 목에서 돋아나왔을 때
추억으로 떨어지는
초록의 물방울, 물방울들.
가볍게 나뭇잎을 떠나는 물방울, 더 큰 물방울들이
숲의 냄새를 터뜨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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