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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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장편소설 연재] 진짜 교회 (1)

by 브린니 2020. 7. 27.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진짜 교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상상하면서 장편소설 진짜 교회를 연재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을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시길 빕니다.  

 

 

 

진짜 교회

 

 

 

 

1 홀리 웨딩 Holy Wedding

 

김영수 목사는 노회 모임을 마치고 사택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저녁노을이 빌딩 사이로 새어들고 있었다. 골목으로 막 접어들자 공사 차량이 길을 막았다. 그는 핸들을 돌려 옆 골목으로 빠져들었다. 갑자기 어둠이 훅 밀려들었다. 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질 시간이 아니었다. 조금 전부터 노을이 물들기 시작했는데 벌써 짙은 어둠이라니. 그는 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소경이 된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천천히 떴다.

 

붉은 노을이 주위를 물들이고 있었다. 김영수 목사는 낮은 건물들 사이를 빠져 나와 골목을 다시 한 번 돌자 왼쪽으로 공사장이 보였다. 오늘부터 재개발 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포클레인이 낡은 집들과 함께 교회 건물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십자가가 달린 첨탑이 반쯤 땅에 묻혀 있었다.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김영수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의 현주소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가슴이 쓰라렸다. 얼른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그곳을 빠져나왔다.

 

사택으로 돌아온 김영수 목사는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서재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이어리를 펴놓은 채 묵상에 잠겼다. 그에게는 4년 3개월의 목회기간이 남았다. 3개월 뒤에는 안식년 선교를 하기 위해 브라질로 떠날 것이다.

 

그는 목회 마지막 3년에 자신의 전 인생이 걸려 있다고 느꼈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목회의 절정에서 모든 걸 잃는 목회자들을 많이 보았다.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목회자로서 오점을 남긴 상태로 심판대 앞에 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동안의 사역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왠지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한 듯 보였다. 교회는 지난 32년간 꾸준히 성장했으며 그가 은퇴할 무렵 세 번째 성전이 완성될 것이다.

 

김영수 목사가 처음 개척한 교회는 7년 만에 3,000명의 신도가 모였고, 새로운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성전 입당 예배를 끝으로 안식년을 신청하고 목회를 쉬기로 했다. 안식년이 거의 끝나갈 즈음 그는 자신이 개척한 교회를 떠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님이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개척한 교회에 머물면서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무렵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청빙 제의가 왔다. 청빙받은 교회는 목회자들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었고, 교회가 둘로 나눠진 상태였다. 그는 주님이 자신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시고 계신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개척한 교회 성도들이 김영수 목사를 눈물로 배웅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떠나온 뒤 개척한 교회는 교세는 크게 확장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가지 문제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새로 들어온 목회자마다 개척한 전임자와 비교되며 곤욕을 치렀다. 교인들은 이런 저런 시비를 걸어 목회자를 괴롭혔고, 여러 목회자가 자리를 바꾸었다. 최근에 그가 개척한 교회는 그의 둘째 아들이 맡아서 섬기고 있다. 교회 세습이 아니냐는 비판 아닌 비판도 있었지만 김영수 목사가 떠난 뒤로 거의 열 차례나 목회자가 바뀐 뒤에 아들이 취임한 것이었다. 그 역시 교회를 떠나온 뒤 단 한 번도 옛 교회에 관여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그의 아들은 자신보다 나으면 나았지 어리석지 않았다.

 

아들은 가끔 아버지와 같은 전 세대 목회자들의 목회방식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목회 잡지에 발표하곤 했다. 아들은 전 세대 목회자들이 율법주의, 기복주의, 인본주의에 물들어 복음의 진리를 온전히 전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아들 세대 목회자 역시 교회가 타락하는 것을 제대로 막아서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옛날 방식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소박하고 조용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말씀을 전하고,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도록 한다면 좋은 목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40년을 꾸준히 달려왔다. 32년 전에 이 교회를 맡았을 때 신도 수는 불과 300여 명에 불과했다. 동료들은 3,000명 되는 교회를 놔두고 왜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교회로 가느냐고 말렸다. 그러나 그는 30명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새로 맡은 교회가 7년 만에 1만 명이 넘자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사택과 자동차, 개인 기도처소까지 마련해 주면서 한사코 놓지 않았다. 교회는 그와 함께 늙고자 했다. 하나님께서도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다. 어쩌면 그가 하나님께 간곡히 묻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두 번째 교회를 자신의 평생 목회지로 선택했다. 그때쯤엔 다시 교회를 옮기거나 개척을 할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그만큼 안일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더욱 성장시키셨고, 현재는 거의 7만 명의 성도가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그가 자부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욕심을 갖지 않고 한곳에서 묵묵히 목회를 하면서 7만 명 성도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해 왔다는 것이다. 그만하면 그리 나쁜 목회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초부터 무엇인가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교회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성공한 목회자라고 하고, 경건하다고도 하고, 교회가 살아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이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주님은 그의 앞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신 후에 침묵하고 계셨다.

 

그는 지난 해 말 총회장에서 물러났다. 애초에 교단 정치에는 발을 들여놓을 생각이 없었지만, 마지막 안식년 전에 꼭 한 번 맡아달라는 성화에 못 이겨 맡은 자리였다. 1년 하고 나니 다시 1년 만 더 해달라고 해서 거푸 두 해를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일한 2년 동안 교단은 예전보다 많이 안정이 되었다. 처음 출마를 했을 때는 교단이 어지러울 때라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졌다. 여러 교단들이 선거 부정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을 때였기에 정말 조심하며 선거를 치렀다. 그 역시 어쩔 수 없이 교단 목사들을 일일이 만나고, 점심 식사 정도는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후보자들은 여전히 많은 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총회장에 취임한 뒤 여러 중진 목사들을 만나 선거를 공정하게 치르고, 돈을 쓰지 않는 방향으로 선거법도 손질하고, 의식도 새롭게 하자며 설득했다. 사회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던 터라 두 번째 출마에선 거의 선거비용을 쓰지 않고 당선될 수 있었다. 그가 퇴임할 때 많은 목사들이 뜨겁게 박수를 쳤던 기억은 그의 목회 인생에 남을 만한 또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는 점차 좋은 행적만 남긴 채 목회 인생을 끝낼 기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았다. 교회가 성장한 것 말고 자신이 정말 주님 앞에서 온전한 사역을 했는가, 계속해서 묻게 되는 것이었다.

 

새벽기도마다 주님께 물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씀도 없었다. 어쩌면 주님이 침묵하신 지가 한참 되었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니, 주님께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물었던 기억도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그는 지혜로운 요셉을 불러 꿈 해몽을 부탁하는 애굽 왕이 된 심정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해몽할 꿈조차 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듯이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하시면서 알려주시기를 구했다.

 

한 가지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이 1년 자리를 비우는 동안 교회를 맡아서 잘 이끌어줄 목회자를 최선을 다해 구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개척한 교회도 자신이 떠나자마자 어려움을 겪었고, 이 교회에서 첫 안식년을 보냈을 때도 미국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하고 온 목사 때문에 교회가 흔들렸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수많은 목회자를 면접했고, 점찍어둔 목회자 중 한 명은 안식년 1년 동안 지켜본 뒤 후임자로 추천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생각 말고 주님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은퇴 전에 후임 목사를 선정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없지만 과연 후임 목회자를 선정하는 일이 자신의 근심거리의 전부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는 묵상에서 깨어나 의자에서 일어섰다. 저녁 7시였다. 새로 등록한 가정을 심방하기로 되어 있었다. 8시쯤 남편이 교대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다고 했다. 그는 점심이나 저녁 식사 때는 결코 성도들의 가정을 심방하지 않았다. 목사의 방문 때문에 성도들이 식사 준비에 정성을 들이다 보면 분주해져서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도들이 말씀을 잘 듣는 마리아가 아닌, 일에 분주한 마르다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번 주에 새로 등록한 가정은 부부와 아들 하나뿐이었다. 오랫동안 모셨던 시어머니가 치매 증세가 심해져서 당분간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노라고 말하며 부끄러워했다. 거의 십오 년 가까이 모셨다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싶었다. 예배를 드리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그의 눈길은 거실에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처음 심방하는 가정에 들어서면 책장부터 보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눈이 많이 어두워지고 난 뒤부터는 눈을 찡그리며 책들을 훑어보는 것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유난히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홀리 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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