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거룩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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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짧은 소설] 거룩한 아내

by 브린니 2020. 7. 19.

거룩한 아내

 

 

그저 착하게 사는 게 가장 나은 인생이라면 이것 참 내 인생도 별 볼품이 없네.” 하고 아내가 말했다.

 

그는 가끔 아내가 심오한 말을 뱉으면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다. 세상에는 인생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아내는 몇 년 전부터 신앙에 귀의해서 바이블 스터디에 열심을 내고 있었다. 대개 신앙생활을 하면 성경구절이나 교리 등을 읊기 마련인데 아내는 자기가 깨달은 것을 뜬금없이 내뱉곤 했다.

 

“하나님이 그냥 착한 사람으로 살라고 하시네. 좀 시시하지 않아?”

그러나 아내의 말 속에는 착하게 사는 것은 결코 시시하지 않고, 제발 착하게 살아라, 하고 K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요즘엔 착하다는 말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 말의 참뜻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말이다.

 

아내는 소위 최고 대학을 나왔고 지식과 교양을 갖출 만큼 갖추었다. 사회가 아주 비싼 값으로 자신을 쓰고자 한다면 기꺼이 봉사하겠노라고 우스갯소리를 자주 했었다. 하지만 아내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가정을 돌보는 것이 사회생활보다 훨씬 유익하다고 생각을 바꾼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닌, 그냥 착한 사람으로만 사는 것은 별로 흥미를 끄는 대목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내야 말로 야망이 크지만 그걸 이루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저 관망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K가 지역구로 내려가야 하겠다고 말하자 아내는 가끔 나가서 자문을 해주던 연구소를 그만두고 곧장 따라나섰다. 두 집 살림을 하느니 집을 두 채 갖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서울 집은 이미 선거기간에 은행에 넘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지방에 집을 마련한다는 것도 녹록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내는 급한 성격답게 쉽게 해치웠다. 혼자 사는 어머니가 집을 정리하고 돈을 보태는 바람에 그런 대로 쓸 만 한 집을 구한 것이다.

 

아내가 얻은 이층집은 제법 널찍했고 이 층이 아래층과 분리된 느낌이 들어 부부만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내는 차를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고 들떴다. 그러나 처음 몇 번 차를 마셨을 뿐 K는 서울과 지역구를 오가느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내는 조금 우울한 듯 하더니 다시 신앙생활에 몸과 정신을 다 쏟았다. 아내는 그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불평하면서도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자고 재촉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지쳐서 돌아온 그에게 가끔 침대 송사를 하곤 했다. K는 대꾸조차 하기 귀찮을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아내가 하는 말에 건성으로 몇 마디씩 맞장구를 쳤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그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는 오늘밤은 침대 부흥회를 그만하고 일찍 자면 어떠냐고 약간 기죽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사람들이 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어떻게 감히 인간이 신을 사랑하겠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신을 사랑할 능력이 있을까? 입버릇처럼 신을 사랑한다고 지껄이는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 차라리 꽃이나 고양이를 사랑한다고 읊조리라고 해.”

 

아내는 매번 독설로 대화를 끝맺곤 했다. 아내는 영적인 면에서 뭔가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었다. 아내는 K를 비롯해서 겉으로 경건한 척하는 외식주의자들을 경멸했다.

 

아내가 점점 거룩해지면서 그가 받은 선물은 오히려 자유였다. 아내는 그의 생활을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고 권리 선언을 할 수 있다. 자유란 결국 신의 눈앞에서부터 도피함으로써 타락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K는 아내로부터 잠정적으로(들키지 않는 한) 맘껏 죄 지을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K는 자유를 최대한 즐기고자 했다.

 

낯선 것이야말로 그에게 친밀감을 불러 일으켰다. 낯선 것, 낯선 곳, 낯선 상황과 낯선 사람만이 그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매혹이라고 부를 만한, 불안한 예감을 느끼게 했다. 낯선 것은 흥분과 설렘을 동반했으며, 언제나 두려웠다. 그는 자유를 얻은 만큼 죄를 지었다. 그는 점차 자신의 내면을 보는 시간을 줄여나갔다.

 

아내는 K의 영혼 상태와는 상관없이 그가 일찍 들어오는 날을 골라 침대 부흥회를 계속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K 자신도 그렇게 거룩하게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뇌리에 남을 만한 이야기를 들었어. 내가 자꾸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찬양만 부르니까 그분이 왜 자꾸 사랑 타령이냐고. 자기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았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야.”

 

아내는 자기보다 더 나은 걸 깨달았거나 좀 더 높은 신앙의 경지를 보았을 때 일종의 질투에 이끌리는 것 같았다.

 

“사랑이 더 낫지 않을까. 하나님은 탕자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이셨고.”

K가 한 마디 했다.

“아니야,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닌 것 같아. 그분은 정말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걸 경험한 것 같아.”

아내가 남이 경험한 어떤 영적인 것에 잔뜩 긴장하며 말했다.

 

“하나님을 너무 무서운 법의 신으로 생각하는 것 아닐까. 하나님은 무슨 죄를 짓더라도 다 용서하는 분이잖아.”

“무조건 용서하시지 않아. 죄를 짓는 건 그분을 반역하는 거야.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어.”

“그래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니까. 내 의견은 그래.”

“그게 당신 의견이라고? 그것은 당신 의견이 아니라 그냥 악한 거야.”

아내가 소리쳤고, K는 다시는 아내와 이런 식의 대화를 하다간 큰일나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K가 정치인이 된 것을 우려했다. 공대를 졸업하고 뒤늦게 경영을 공부한 덕에 정부 자문 역할을 몇 번 하더니 대통령 후보로 나온 의원을 보좌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의도에 십년 넘게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K가 아들과 함께 모형 비행기를 조립하고 있는 모습을 가장 좋아했다. K가 유일하게 아들과 함께하는 경건한 시간이라는 이유에서였다.

 

K는 아들을 사랑했고 늘 부드러웠지만 궁극적으로 아들을 무서워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을 닮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K는 아들과 대화하지 않았다. 아들이 자신의 언어를 닮을까 걱정했으며 거짓으로 가득 찬 자신의 내면을 닮을까 두려웠다. K는 아들이 자기처럼 텅 빈 내부를 지닌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될까봐 늘 거리를 두었다.

 

그는 결혼하고서도 한참 동안이나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2년쯤 뒤에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동의했을 뿐이었다. 그때 K는 자신을 닮은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었다.

 

정작 그 아이는 세상에 나올 의지가 전혀 없음에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불평등한 조건에서 타의로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기에 출산은 죄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서는 자신이 태어나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처음으로 했으며, 자식은 신의 축복이었노라고 떠벌였다.

 

지역구로 내려온 지 채 3년이 못 되었을 때 K에게 불행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그가 속한 계파가 비리로 몰려 한꺼번에 정치판에서 퇴출당한 것이다. 공적인 비리와 함께 사생활의 부도덕성까지 모든 것이 세상에 까발려졌다. 이 정도면 정치적으로 재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좌장 노릇을 하던 선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품에 안겼을 때 그는 자기 내부에서 또 하나의 인격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인격은 아름답지도 성스럽지도 않았다. 고귀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또 다른 인격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욕할 만 했다. 그것은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정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보이지 않는 악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살아 왔던 것이다.

 

“죄가 인격이라는 걸 처음 깨달았어.”

그가 아내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 사탄이 늘 대화를 걸어오지.”

“응, 난 그와 말하기를 즐겼어.”

“거짓의 언어를 듣지 말았어야지. 들었더라도 빨리 귀를 씻고 마음에서 지웠어야지.”

“내가 어리석었어. 정말 어떻게 그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자기 탓이 아니야. 어릴 때부터 사랑의 언어로 대화한 적이 없어서겠지. 거짓말밖에 배운 게 없으니까.”

 

K는 절망했다. 자신의 언어가 전부 거짓말뿐이었다니. 새로 말을 배워야 하다니. 십수 년 동안 말로 벌어먹어온 그가 이제는 언어를 잃고 망연자실했다. 이제부터라도 정직한 언어를 하나씩 터득해야만 했다.

 

intergrity vs insincerity. 그는 양자택일해야 했다. 더 이상 타협할 수 없었다. 물론 하나의 인격이 그의 내부로부터 빠져나갔으므로 그는 한 마음으로 성실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마음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며 언제나 그랬듯이 그는 쉽게 과거를 돌아가는 습성이 있었다.

 

과거를 잊지 말고 과거가 반복되지 않게 하라.

 

K는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일러주었다. 지금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수년 동안 자신을 향해 말해왔었다.

 

“이제 자기 자신하고 그만 대화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게 아니라 사탄과 말하고 있잖아.”

그는 눈을 들고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지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K 자신이 바로 사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자기라는 감옥에 가두고, 자기를 사랑하다보면 그 나르키소스의 연못이 곧 지옥으로 바뀌지.”

“내가 그렇게 내 자신에 황홀해 했단 말이야?”

“어쩌면 당신은 아무도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까봐 아예 서둘러 당신 스스로 당신 자신에게 망연자실하지 않아? 악에 바쳐서 말이야, 불쌍한 사람.”

 

그는 울 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사실 감정의 동요도 별로 없었다. 다른 두 개의 인격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가 하나의 인격이 빠져 나가자 더 이상 감정조차 느낄 수 없었다. 무기력하고 침통했다. 자기 자신이 더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조차 없었고 그럴 필요조차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아내에게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앞으로 수십 년 겪게 될 수치 따위를 걱정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모욕을 피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은둔자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인생의 비참을 예감했다.

 

“이제 주님과 이야기해. 당신의 마음을 다 토해내. 한 번도 누군가에게 당신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잖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니까 뼈가 썩는 거야.”

 

그는 아내의 모든 말이 진리처럼 들렸다. 그는 한때 정당의 대변인이었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말했지만 단 한 번도 연출 없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대본 없이 말하는 게 그의 탁월한 언변이었으나 모든 것은 이미 계획된 것이었다. 임기응변 역시 수없이 반복한 연습의 결과일 뿐이었고 사실 진정한 돌발 상황도 없었다. 그는 정치적 언어가 거짓에 기초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사생활조차 거짓으로 귀결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공적인 삶이 모두 거짓인데 사적 생활이 정직하리라 기대했던가. 이런 도착은 어디에서 근거한 것일까. 그는 자신이 우스웠다. 정치는 더러워도 자신은 깨끗하다는 믿음, 이런 식의 허상은 어느 종교의 산물인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이제 왔어.”

아내는 말 그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그를 받아주었다. 아내는 그것이 성경대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누가 뭐래도 남편이었고, 가족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 아내에게 그는 강도를 당해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이웃이었다.

 

“선이 무엇인지 아니?”

“절대 선이란 악이 전혀 섞이지 않은 거야.”

“그럼 악은 뭐지?”

“악은 선과 함께 있는 거야.”

 

“왜 그렇지?”

“절대 악이란 있을 수 없어. 선은 언제 어디나 존재해. 악은 가끔 끼어들지. 악은 늘 선에 기생하는 형태로 존재해. 그래야 자신이 악인 걸 들키지 않으니까. 악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야. 악은 인간이 절대적으로 선한 신에게 반역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파생된 것이지. 그러니까 악은 선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어. 악이 자기 정체가 탄로 나면 선인 척하거나 자신은 악이 아니라 단지 선의 이면, 또 다른 얼굴일 뿐이라고 속이지. 심지어 자신이 선의 일부라고 우기지.”

“자기 정체를 드러내고 자기 얼굴로 사업을 하려는 악이 있다면 매우 저급한 것이로군.”

 

“악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인간이 악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해. 나 스스로 악하지 않다면 말이야. 악을 겪어보면 알지. 나도 이미 악한 존재라는 것을. 물론 결과적으로 악한 거야. 선을 행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악하지는 않아. 인간이 마음으로부터 악해지기란 그렇게 쉽지 않으니까.”

“마음이라고? 당신은 아직 악을 모르나봐. 인간의 마음이 가장 부패하고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아무튼 당신은 나빠. 당신은 패배했으니까. 이제 악의 졸개 노릇은 그만해. 아무리 해도 악에게 이길 수 없어. 당신은 지금부터 선한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해.”

아내는 그것을 경건의 훈련이라고 불렀고, 목적은 거룩이었다.

 

그가 아내에게 돌아온 지 벌써 몇 개월이 흘렀다. 모든 날들이 평온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일이 끝나면 밤 산책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그와 아내는 별 말 없이 걸었다. 아내는 그에게 그냥 옆에서 걷기만 하라고 말했다. 핼리혜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것 봐. 별이 떨어지고 있어.”

아내가 눈물로 빛나는 눈동자를 들어 하늘을 보면서 소리쳤다.

그는 벤치에 구부정하게 앉아 몸을 떨었다.

 

“겁먹지 마. 다른 별이 뜰 거야.”

아내는 결혼식에서 보여주었던 그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돌아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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