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Box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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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시, 짧은 소설)

[짧은 소설] Boxer

by 브린니 2020. 7. 27.

Boxer

 

 

왼손 훅으로 끝이 났다. 상대는 이십여 초 가량을 정신을 잃고 일어날 수 없었다. 붉은 색 트렁크를 입은 선수는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로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했다. 링 위에 홀로 남은 그는 링 밖을 바라보았다. 관중이라고 해봐야 수십 명뿐이었고, 대부분 대회 관계자들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주목하지 않은 채 서로들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곧 메인이벤트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는 싸구려 크로피를 받고 링을 내려왔다. 비록 논타이틀매치였지만 상대가 국내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트로피가 수여되었다. 그는 당분간 챔피언에 도전할 수 없을 것이다. 챔피언이 회복되려면 꽤 시간이 걸릴 테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자신에게 첫 KO패를 안긴 상대를 도전자로 지목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스물두 살의 젊은 한국 챔피언은 동양 타이틀 도전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챔피언이 왼손잡이여서 왼손 훅을 잘 쓰는 선수 중 랭킹에 없는 그를 택해서 훈련 삼아 시합을 치른 것이었다. 이 시합 다음에 열릴 메인이벤트가 바로 도전하려던 동양타이틀매치였다. 이번 시합 결과로 챔피언이나 챔피언을 쓰러뜨린 그나 모두 난감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는 체육관으로 돌아가 관장과 마주 앉았다.

정말 타이틀에 도전할 생각입니까?

관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묵묵부답이자 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왼손을 아껴야죠. 그렇게 함부로 쓰다간……

여기까지 말하고 관장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쓸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는 거 관장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을 다셨다.

 

시합을 할 때 그는 관장의 말대로 계속 피했고, 못 피할 땐 코너에 몰려 실컷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거의 도망가다시피 하면서 주먹을 피해 달아났다. 오른손으로 가드를 하고, 왼손으로 잽을 날리는 시늉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다 상대가 결정적인 오른손 훅을 날렸다.

이걸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발을 급히 빼면서 날아오는 주먹을 더킹으로 피하는 동시에 왼손을 뻗었다.

 

스트레이트에 가까운 훅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상대는 링 위에 드러누웠고, 열을 넘게 셀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쉰두 살의 복서에게 결정타를 맞는 스물 둘의 챔피언. 사람들은 놀랐고, 그러나 우연이겠지, 여기고는 곧바로 해프닝을 잊으려는 듯 잡담을 나눴다.

그가 도장을 찾은 것은 1년 전이었다. 쉰을 갓 넘긴 그는 근육이 축 늘어지고 배가 가스로 빵빵하게 부푼 상태로 나타나 운동을 좀 하고 싶다고 사무를 보는 여직원에게 말했다. 예전에 잠시 국내챔피언에 올랐지만 일본 복서에게 무참하게 패한 뒤 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여직원은 그를 아래위로 훑은 뒤 이렇게 말했다.

 

한 달 20만원 선불이에요.

 

그는 멍하니 서 있다가 몸을 돌려 도장을 나왔다. 여직원은 피식 웃고는 계속해서 청소를 했다. 딱 봐도 사흘을 못 버틸 것 같은 중늙은이가 와서 복싱을 하겠다니 우스웠다.

 

사흘 뒤 그가 다시 나타났을 때 여직원은 그를 못 본 체했다. 그는 말할 상대를 찾지 못해 한참 동안 도장 여기저기에 눈길을 주었다. 운동이 한창 열기를 띠고 있는 시간이어서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때 관장이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도장으로 들어왔다. 여직원은 잽싸게 그에게 다가와 한 달에 이십 만원, 하고 말했다. 그는 여직원에게 돈을 건넸다.

 

관장이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여직원은 관장님 새로 들어온 신입 있어요, 하고 외쳤다. 관장은 그를 바라보면서도 어디? 하고 여직원에게 물었다. 여직원은 고갯짓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는 쭈뼛거리며 관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관장은 그에게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여직원이 그를 툭 치며 사무실 쪽으로 밀었다.

 

관장은 그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전에 운동 좀 하셨나?

관장이 물었다.

 

아뇨.

권투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여기는 살 빼는 클럽이 아니고 진짜 복싱하는 애들만 있는 뎁니다.

관장이 그의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는 한참 동안 망설이더니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운동하겠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권투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해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관장이 물었다.

오랫동안이라니 얼마나요?

허리케인 죠*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게 언제적 만환데. 나이가……

쉰입니다.

아, 네. 그 만화 재밌죠. 주인공이 별로 이기는 적이 없었지만.

 

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쉰을 바라보는 늙은 세계챔피언과 아직도 소년시절 권투 만화를 기억하며 복싱의 꿈을 버리지 않는 쉰을 넘긴 중년남자. 관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나와서 운동하시죠. 줄넘기도 좀 하시고, 애들 주먹 쓰는 거 구경도 하시고. 뭐, 그러다 샌드백치고 그러는 날도 오겠죠.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사무실 밖에서 요의주시하고 있던 왕년의 여자 복싱 챔피언 여직원은 그를 보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을 허벅지에 쓸면서 어정쩡하게 인사를 했다. 그도 고개를 까닥하고 인사를 했다.

 

다음날부터 그는 도장에 나와 줄넘기를 했다. 그리고 다른 기구를 타거나 맨손체조를 했다. 며칠 동안 그는 거의 반복적으로 줄넘기 등을 할 뿐 글러브를 끼고 권투 흉내를 내지 않았다. 관장이 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역시 자신의 몸으로 권투를 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꾸준히 맨손 운동을 하면서 몸에서 가스와 지방을 빼냈다. 그는 조금씩 근육이 붙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석 달이 지났다. 관장은 그를 불러 글러브를 끼워주었다. 여직원이 와우, 하면서 소리를 높여 축하해 주었다. 여직원은 쉭쉭하면서 셰도우 복싱 자세를 취하면서 그를 향해 웃었다. 그는 조금씩 샌드백을 치기도 하고, 펀치볼을 두드리기도 했다.

 

다시 석 달이 지나자 관장은 그와 여직원을 불러 링 위로 올라가라고 말했다. 여직원은 그에게 몸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며 농을 걸었다. 관장은 그에게 주먹을 날릴 생각은 말고, 주먹을 피하는 데 신경을 쓰라고 말했다.

 

그는 여직원이 날리는 잽을 피하는데 신경을 집중했다. 왕년의 챔피언 여직원은 빠르게 발을 놀리며 쉴 새 없이 펀치를 날렸다. 그는 글러브를 얼굴에 대고 링을 빙빙 돌기만 했다. 잽 한 번 내보지 못했다.

 

1라운드가 끝나자 관장은 여직원에게 펀치를 좀 더 강하게 날리라고 주문했다. 그에게는 펀치를 피하면서 상대가 정면으로 마주서면 잽을 뻗으라고 말했다.

 

여직원은 펀치를 세게 날렸고, 그는 가드로 막았다. 여직원과 링 가운데서 맞서면 그는 잽을 빠르게 내뻗었다. 그가 잽을 내면 여직원은 더 세게 펀치를 날리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뒷걸음치면서 좌우로 돌았다. 관장은 그에게 좋다고 소리쳤다.

 

2라운드 스파링이 끝났다. 그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에겐 첫 복싱이었다. 그는 가슴이 울컥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쉰이 넘어서 권투를 하게 되다니.

 

그는 몇 달 전 직장에서 잘렸다. 이제 더 이상 같은 업종의 일을 하기 힘들게 돼버렸다. 소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그는 죽기 전에 복싱이라도 하고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는 용기를 내서 도장을 찾아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대견해했다. 이제 첫 복싱을 링 위에서 해본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거의 일주일에 한 번꼴로 그는 링에 올랐다. 체급이 전혀 맞지 않는 상대들이 대부분이었고, 십대 어린 친구들도 섞여 있었다. 그는 실컷 두들겨 맞았고, 주먹을 피해 달아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맞을 때도 피해 달아날 때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서 흥분을 진정할 수 없었다. 가끔 상대의 얼굴에 잽을 가볍게 적중시킬 때 쾌감이란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10달쯤 지나자 관장은 그를 불러 체중을 쟀다. 68. 5kg이었다. 관장은 그에게 웰터급으로 시합에 나가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진짜 시합을 말하는 거냐고 물었다. 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뒤 그는 정식 시합에 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그는 프로선수협회 정식 등록 선수로서 첫 시합을 뛰게 되었다.

 

그는 4회전 내내 실컷 두들겨 맞다가 내려왔다. 그러나 그는 승리했다. 왼손 훅이 상대의 턱에 적중했고, 쓰러져서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행운이었다. 상대 역시 오늘 첫 시합을 하는 20대 초반의 선수였다. 아무렴 그렇지,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상대는 랭킹10위 안에 드는 30대 초반 선수였다. 3회전 2분 30초에 그가 상대를 눕혔다. 우연이 두 번이나 겹치다니. 사람들은 의아했다. 하지만 우연은 우연 아닌가. 3회전 내내 맞다가 왼손 훅 하나에 결판이 나다니.

 

세 번째 상대는 첫 시합에 나선 20대 중반이었다. 4회전 15초쯤 그가 상대를 눕혔다. 왼손 훅이었다. 이번에도 우연인가. 우연이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 왼손 훅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왼손 훅에 걸린 상대들은 모두 링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관장은 국내 챔피언과 동양챔피언 도전 전초전 성격 논타이틀전 매치가 성사됐다고 말했다. 그는 놀랐지만 담담하게 앉아 있었다.

이기면 안 돼요. 왼손 훅 쓰지 말고요.

관장이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도 웃었다.

 

아, 진짜 농담 아닙니다.

관장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 사람 동양챔피언 만들려고 그쪽 도장에서 아주 난리예요. 형님이랑 시합하는 것은 맷집좋은 사람, 왼손 쓰는 사람, 랭킹에 없는 사람, 뭐 이런 조건이 맞아서 그런 거지 형님이랑 꼭 하겠다는 생각 없어요. 그저 시합 한 번 뛰는 것뿐입니다. 대신 그 친구 안 다치게 살살 하는 겁니다. 이번엔 왼손을 잽으로 자주 뻗어주세요. 훅은 안돼요. 절대.

 

제가 이기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붙은 시합인가요?

아닙니다. 그런 거래는 없어요. 그냥 살살 하라는 거죠. 하던 대로 잘 피해다니면서 4회까지 버티면 돼요.

그럼 제가 조건을 걸 수도 있나요?

 

네? 무슨 조건을……

동양챔피언을 따면 국내챔피언 결정전에 날 추천해주는 조건을 걸어주십시오.

아직 형님은 랭킹에도 없는데.

혹시 알아요. 시합 결과가 좋으면 랭킹에 들 가능성이 생기겠죠. 앞으로 몇 게임 더 하면 랭킹에 들 수도 있죠.

 

형님, 왼손 훅이 몇 번 성공했다고 진짜 권투 선수가 됐다고 생각하세요?

이왕에 하는 거 챔피언 한 번 해보고 링에서 내려오고 싶습니다.

형님, 쉰입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믿으세요?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그냥 해보고 싶은 걸 하는 것뿐입니다.

뭐, 그러세요. 도전하는 거야 아름다운 거니까.

 

그렇게 시합이 성사되었다. 상대에겐 왼손 훅을 조심하라고 관장이 여러 번 일렀다고 했다. 상대측에서는 바로 그 때문에 시합을 하려는 것이니 걱정 말라고 답했다고 한다. 현 동양챔피언도 왼손 훅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상대에게 좋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도 득될 게 없는 시합이 되고 말았다.

 

시합이 끝나고 스포츠 기자 한 명이 찾아왔다. 스포츠신문 부장 대리라고 밝힌 기자는 나이가 꽤 들어보였다. 기자는 나이든 복서에 관심을 보였다. 다음번 국내챔피언 타이틀 매치에 그가 나갈 수 있는지 여러 루트로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틀매치가 성사되면 자신에게 가장 먼저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겐 그런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와 시합을 했던 상대가 뇌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상대는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동시에 그는 협회에서 제명되었다. 협회는 그가 상대의 뒤통수를 가격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런 반칙을 한 위험한 선수는 협회 규정에 따라 제명한다는 것이었다.

 

관장은 항의하겠다는 그를 말렸다. 협회를 상대로 싸워서 이득 될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관장은 협회 소관이 아닌 연습 경기를 많이 잡을 테니 왼손 훅만 조심한다면 자주 링 위에 올라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형님은 챔피언 되는 게 꿈이 아니잖아요. 권투를 해보고 싶었으니까 실컷 하게 해드릴게요. 젊은 애들 앞길 막지 마시고 취미로 하세요, 권투.

 

관장은 그동안 복싱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했으니 이제 제도권에서 권투하지 말고 언더에서 즐기면서 운동하라고 다독였다. 그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자신이 왜 권투를 하려고 했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복싱을 하겠다는 것은 링 위에서 상대와 싸우겠다는 것이고, 이기겠다는 것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챔피언이 되겠다는 것 아니었는가. 그저 재미로 하겠다면 도장이 아니라 헬스클럽에서 복싱 다이어트를 했어야 하지 않은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나 그들을 이해해야만 했다.

 

비록 몇 경기 하지 않았지만 그의 왼손 훅은 가공할 만했다. 그의 훅을 맞고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다. 세계챔피언은 몰라도 동양챔피언은 거뜬할 것이다. 3, 4회전을 뛰는데 체력적으로 문제없고, 그 안에 왼손 훅으로 결정을 내면 된다. 그러나 그처럼 늙은 복서가 나와서 설쳐대면 젊은 유망주들의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협회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를 제명한 것이다.

 

그는 그가 싸우고 싶은 상대가 복서들이 아니라 혹시 그를 해고한 회사 임원과 이사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럴 수도 있었다. 그들을 찾아가 두들겨 팰 수 없으니 애꿎은 애송이 복서들이나 때려눕히는 것 아닐까. 그럴 바에야 권투를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그는 그 뒤로 계속 도장에 나와 운동을 했다. 복싱이 아니라 그저 운동이었다. 1년이 지나자 관장은 그에게 강습료를 받지 않았다. 그는 침묵한 채 샌드백과 펀치볼을 쳤다. 줄넘기도 빠지지 않고 했다. 관장은 그에게 연습 경기를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그는 계속해서 뛰고 땀을 흘렸다. 그러나 링 위에서 주먹을 쓰는 일을 없었다.

 

그는 1년 전까지 누군가와 싸워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누굴 때려본 적도 없었다. 그는 늘 피해자였다. 세상으로부터 코너에 몰리고, 얻어터지고,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복싱이 좋았다. 강렬한 펀치를 날리고, 통쾌하게 상대를 때려눕히고, 승자로서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는 복서가 부러웠다.

 

그는 네 번의 시합에서 그것을 맛보았다. 그랬으면 됐다. 더 이상 복서노릇을 할 이유는 없다. 그의 인생에 복서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은 소풍 나온 것이었다. 긴 외출이었다. 꿈같은 소풍, 멋진 외출이었다. 훅 한방으로 동양을 제패했던 오영호와 같았다고 기자한 한 말이 그가 들었던 최고의 찬사였다. 그도 오영호의 팬이었다. 사실은 오영호가 왼손 훅이었는지 오른손 훅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여직원에게 사이먼과 가펑클Simon&Garfunkel이 부른 The Boxer*를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다음날부터 그는 도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시에서 하는 공공근로 사업에 나가서 일했다.

 

* 오영호 (吳英鎬) 1955 .04. 23.

  - 오소독스

  - 한국 라이트급 챔피언(1974~1975)

     OPBF 라이트급 챔피언(1976~1981)

  - 총전적 : 62전 46승(29KO) 12패 4무

  - 세계 타이틀 도전 두 번 실패

 

* 허리케인 죠 : 원작 Asao Takamor 작화 Tetsuya Chira 1968-1973 일본 연재. 1998년 서울문화사 출간.

 

* The Boxer는 미국의 음악 듀오 사이먼&가펑클Simon&Garfunkel의 앨범 Bridge over Troubled Water(1970년)에 수록된 곡. 폴 사이먼이 쓴 이 곡은 1인칭 애도의 형태와 3인칭 복서의 촌극을 다양하게 표현한 포크 록 발라드이다. 가사는 대부분 자서전적이며 성경에서 영감을 받았고, 그들이 부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시기에 썼는데 빈곤과 외로움노래한다. 애처로운 후렴구 'lie-la-lie' 반복이 리듬을 고조시킨다.

 

The Boxer

 

I am just a poor boy

though my story's seldom told

I have squandered my resistance

for a pocketful of mumbles

such are promises

All lies and jests

Still a man hears

what he wants to hear

And disregards the rest

um mmm~~

When I left my home and my family

I was no more than a boy

in the company of strangers

in the quiet of the railway station

running scared

Laying low

seeking out the poorer quarters

where the ragged people go

Looking for the places

only they would know

la la la i~~~

Asking only workman's wages

I come looking for a job

But I get no offers

just a 'Come on'

from the whores on Seventh Avenue

I do declare there were times

when I was so lonesome

I took some confort there

la la la la~

la la al I

And I'm laying out my winter clothes

and wishing I was gone, going home

where the New York City winters

aren't bleeding me

Leading me, going home

In the clearing stands a boxer

and a fighter by his trade

And he carries the reminders of

every glove that laid him down or

cut him till he cried out

in his anger and his shame

I am leaving, I am leaving

But the fighter still remains

um m m~~

 

내 얘기가 잘 알려진 건 아니지만

난 정말 불쌍한 소년이에요

헛된말로 가득 찬

그런 약속에 속아

주먹을 허비했어요

모두 거짓과 놀림이었어요

사람들은 아직도 원하는 것만 듣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리죠

내가 집과 가족을 떠나왔을 때

난 그저 어린아이에 불과했어요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기차역의 적막함속에서

겁에 질려 있었어요

몸을 웅크린 채

누더기 옷을 걸친 사람들이 드나드는

빈민가를 찾아 나섰어요

그들만이 알고 있을법한

그런 장소를 찾아서 말이에요

막노동 벌이라도 하고 싶어

일자리를 찾아 다녔지만,

어떠한 일자리제안도

받지 못했죠

단지 7번가의 매춘부들의 유혹만

받았을 뿐

이제 와서 말하는데, 너무나도 외로웠을 때,

거기서 다소나마 위안을 얻기도 했어요

분명히 말하건대 내게는

너무도 외로운 시절이 있었어요

난 거기서 위안을 구했어요

링 한복판에 한 권투선수가 서 있어요

싸움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죠

매 시합 때마다 권투장갑이 만들어낸

상처 자국들

분노와 수치심에 휩싸여서

그만두겠다고 외칠 때까지

그 글러브는

그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하지만 그 선수는

아직도 놓질 못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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