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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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by 브린니 2020. 7. 24.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진은영

 

 

【산책】

자기만의 사전을 하나씩 만들면 좋지 않을까.

아무도 정의 내리지 않는 단어를 나만의 언어로 붙잡아 두는 일.

지금 첫 장을 써보자.

사랑

인생

행복

일단 세 개만.

 

좋고 아름다운 단어들로만 7개를 채우자.

나쁜 것은 그 다음에.

또 그 다음에.

다음다음에.

다음, 다음, 다음으로 미루자.

 

결코 볼 수 없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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