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아르튀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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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아르튀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철>

by 브린니 2020. 7. 23.

지옥에서 보낸 한철 Une Saison en Enfer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 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미(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 그러고 보니 지독한 치(痴)였다 ―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뛰었다.

나는 죽어 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나는 피와 모래에 범벅이 되어 죽기 위해 재앙을 불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서 팍 쓰러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지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나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 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가 그 열쇠이다 ―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 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꽃을 나에게 씌워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 가지 뒤늦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 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아르튀르 랭보 Arthur Rimbaud (프랑스, 1854–1891)

 

 

【산책】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 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자신의 삶을 이렇게 선언할 수 있다면!

만족스러울까?

어리석었다고 느낄까?

한 평생 잘 놀았으니 이제 그만 됐다고 여길까?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뛰었다.

 

미래를 향한 헛된 바람을 가졌던 사람들은 안다.

희망이 얼마나 목을 비트는 고문인가를.

차라리 희망 없이 사랑하라.

인생을.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 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희망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면 과거의 즐거웠던 한때를 되찾으려고 애를 쓴다.

이미 죽어서 폐기처분된 욕망을 다시 끄집어 올려 잔치를 벌이고 싶어진다.

 

그러나 생을 축제로 선언하고 매일 축제를 열 수는 있지만

축제는 역으로 생을 탈진하게 하고,

후회와 한탄을 부른다.

 

축제는 아름다웠으나

삶은 미학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디오니소스 축제가 죽음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듯

축제의 삶이 끝나고 죽음이 왔을 때

삶에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영혼 한 줌.

 

신의 손 위에 놓인 영혼은 무엇을 증명할 것인가.

 

축제가 끝나기 전에, 삶이 다하기 전에

지옥을 사탄에게 돌려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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