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구스타프 융(C.G.Jung)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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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칼 구스타프 융(C.G.Jung)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

by 브린니 2020. 7. 23.

구스타프 (C.G.Jung) 스위스의 정신과의사이며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입니다. 한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활동에 참여했지만, 성욕중심설에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은 모든 정신활동의 원천으로 마음의 분열을 지양하고 통일된 마음을 실현하도록 촉진하는 자가 조정의 중심핵이 작동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그는 동양사상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동서양에 다리를 놓아 수많은 신화와 민담, 종교적 표상들을 비교 연구하여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였습니다.

 

특히 <꿈에 나타난 개성화 과정의 상징>이라는 책은 학설의 핵심인개성화또는자기실현 개념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융은 무의식이 자율적으로 정신기능을 조정하여 인간이 의식의 표층에서만 살지 않고, 의식과 무의식을 포괄하는 전체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인격의 중심에 도달하고자 하는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책의 부분은연금술의 종교 심리학적 문제 서론으로 시작하는데, 연금술이란 우리에게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불순물을 거르고 정련된 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우리 내면의 어둠 속에서 빛나는 금을 빚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내면에는 외부의 조건과는 무관하게 목표를 추구하는 하나의 과정이 존재하며, 목표는 바로온전한 인간homo totus’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융은 그리스도교의 피상적 예배가 오히려 그리스도를 객체로서 외부에 존재하게 하고, 그리스도와 인간 내면과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앗아가 버린다고 말합니다.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었던 융은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며 상투적인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을 보면서 이러한 이론의 토대를 쌓아간 같습니다.

 

융은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짊어졌는데, 그리스도를 외부적 객체로서 인식한다면, 개인의 죄를 객체인그에게 내던짐으로써 심각한 책임을 면하는 안락한 길을 가게 된다고 설명하고, 이는 기독교 정신과 상치된다고 말합니다.

 

가장 위대한 가치(그리스도) 가장 저열한 무가치() 외부에 있는 것이라면 인간 내면(심혼) 비게 되어 심오함과 지고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융의 표현을 빌자면이때 기독교 문화는 경악할 정도로 공허함을 드러낸다. 그것은 겉보기에 번지르르하다. 그러나 내면적 인간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 머문다라고 비판합니다.

 

융은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자라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가지게 되었고, 인간 내면의 무의식 안에 신성한 형상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통찰하였으며, 원형들은 종교적 도그마와 일치한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무의식적 원형이 자기selbst인데, 서양에서는 그리스도 상을 통해서, 동양에서는 푸루샤, 아트만, 히라냐가르바, 붓다 등을 통해서 충만하게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중에서도 융은그리스도 상징  발전하고 분화된 자기selbst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자기selbst' 융이 개신교 바탕에서 나고 자란 것을 염두에 , 신적 형상으로 지어진 최초의 인간으로서의 완전한 내면이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원죄와 함께 무의식의 세계로 묻혀버렸고 세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 왔습니다.

 

융은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민담, 신화, 종교 등을 연구하면서 무의식의 원형 속에 존재하는 참된 인격으로서의자기 발견한 것입니다.

 

연금술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인격이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 개성화 과정을 나타내 보여줍니다.

 

이렇게 연금술의 비유로서 책의 포문을 융은 본격적으로 꿈에 관한 연구를 통해 개인의 인격이 무의식에 존재하는 전체로서의자기selbst’ 개성화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러 편의 꿈의 내용 중에서 17번째 꿈속에서는푸른 등장합니다. ‘푸른 무의식의 호의적인 손짓이며, 무의식의 신성한 힘으로, 안전한 길을 잃어 구원을 얻지 못할 만큼 소외된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도움을 있는 친구와 형제를 만나는 장소를 제시해 줍니다.

 

20번째 꿈에서는 태양이 등장하는데, 태양은 삶의 원천과 인간의 궁극적인 전체성을 상징합니다. 분열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하나로 묶어줄 전체성을 상징하는 것은 대체로 태양처럼 둥근 만다라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융이 연구한 400편의 꿈에서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만다라 꿈입니다. 만다라Mandala 라마교나 요가 수행에서 사용되기도 하는 동양적 형상으로 여겨지지만, 멕시코의 달력 석판이나 십자가를 들고 있는 아기 그리스도를 그린 교회의 벽화에도 나타납니다.

 

티벳의 세계륜 만다라

 

십자가를 들고 있는 만다라 속의 아기 그리스도

 

전체성이란 자아와 비자아를 합한 것이며, 전체 인격의 총체 개념인 자기Selbst 합치하는 것입니다. 원이 있는 중심은 신의 존재를 뜻하는 너무도 알려진 비유이기도 합니다.

 

전체성이 실현되는 개성화, 자기화는 정신적 문제일 아니라 전반의 문제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성으로 무의식의 활동을 방해하고, 어떤 이들은 육체와 본능의 세계로 행동을 옮겨 무의식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그러나 전체성이 실현되는 변환은, 가장 낮은 것에서 가장 고귀한 것으로, 동물적이며 고태적인 유아성에서 신비적인최고의 인간homo maximus’으 이어집니다.

 

변환은 순환적 발전으로 이루어집니다. , 창조적 변환의 장소인 중앙으로의 완전한 집중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접촉하면 그때는 이미 사이의 대립이 사라지고, 의식은순환적 발전 이루게 됩니다.

 

전체성에의 요구는 어느 정도 고통스럽습니다. 내적 발전 과정의 나선형은 비록 보다 높은 곳에 도달했다 할지라도 다시금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것에서 인간적인 것으로 점진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융은 의식적 정신과 무의식적 정신의 전체성을자기라고 정의합니다. 전체성으로서의 자기로 향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고통과 같이 심각한 흘림앞에 직면하게 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합치처럼 세상과 우주의 모든 대극과 그것의 갈등을 일치시켜야 하는 어려움에 놓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아이들의 놀이로 지칭되기도 합니다. 전체성의 상징은 어린이다운 창조적 힘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융은 일이 일어나는중심 본질이란 결코 인식할 없으며, 오직 그것의 현상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표현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융은 개개인의 삶은 하나의 전체, 신적 형상으로서의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현을 '개성화'라고 지칭하며, 실현이 살아 있는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 낸다고 말합니다.

 

비록 융이 동양의 신비적 사상들의 표상을 여기저기 인용하여 이교적으로 보이긴 해도 기독교 사상의 본질을 깊이 담고 있습니다.

 

원죄 이후 세상에 죄가 가득한 것처럼 인간의 내면 역시 분열되어 의식할 없는 깊이로 가라앉은 것들과 삶의 표면으로 드러난 것들이 산산이 제멋대로 흩어져 있다고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일으키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분열의 결과일 것입니다. 분열된 것들을 전체성으로서 합일시키는 것은 태초에 신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던 온전한 자기selbst 통일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과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과하는 것처럼 쉽지 않지만, 동시에 멍에는 쉽고 가볍기도 합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지만, 동시에 어린아이와 같아져야만 천국에 들어갈 거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극과 극의 합일을 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융이 보여준 만다라의 원처럼 서로 멀리 있는 듯하나 하나로 이어져 있고, 멀리 튕겨나가지 못하도록 원심력이 작용하는 중심의 신적 형상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과정입니다.

 

인간의 삶은 중심의 신적 형상인 자기selbst 기반으로 동서와 남북으로 향하고 있는 대극들을 합일시켜 둥글게 화평을 이루게 하는 자기화, 개성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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