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영승 <개구리 뒷다리 구워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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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영승 <개구리 뒷다리 구워먹으며>

by 브린니 2020. 7. 21.

개구리 뒷다리 구워먹으며

 

 

달빛 쏟아지는 수풀더미 옆 바위에서

불 지펴 개구리 뒷다리 구워

소주를 마신다

소금 뿌리면 맛좋은 살

어떤 아이가 개구리 잡아다

이곳에 버렸누

말라붙은 개구리 수풀더미 위로 던져

고수레 훠이 훠이 고수레

늙은 할아범처럼

젊은 아낙 머리 감고 몸 씻는 것

그네나 나나 피차 남부끄럽지 않은 건

샘터의 맑은 물 때문인가

달빛 때문인가

겨드랑 밑과 샅 여기저기 잘도 씻는다

다는 보일 수 없지만 조금은 보여주고 싶은

그 아낙의 마음

그 마음 또한 참 곱다

때려잡은 개구리

누군가를 이처럼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워질 때가 오면

그 마음과 더불어

나는 죽어 버리리라

술병이 다 비기 전에

그 아낙 가지 말았으면

소금 발라 잘 구운 개구리 뒷다리

꽃 건네듯 먹으라고 건네면 도망갈까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인데

히히 개구리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운 나.

 

                                            ―김영승

 

 

【산책】

반성의 시인, 김영승.

그의 시속의 인물이 시인 김영승과 동일시되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을 지독하게 솔직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은 모두 부끄럼을 탄다.

그 시의 주인공이 독자,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당신들은 시의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한다.

너무나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우아하게 시를 읊조리며 인생을 품격 있게 살고 싶은데

시인 김영승의 시를 읽으면 그 우아함, 품격 따위가 와장창 깨지고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걸 시인 김영승 탓으로 돌린다.

시인이 너무, 쫌, 거시기 하다고.

 

그러나 당신들은 자신의 민낯을 보고 놀라서, 부끄러워서, 그것을 들추는 시인을 비난하는 것이다.

라캉 식으로 하면 끔직한 자신의 실재와 마주하고 놀라서, 부끄러워서, 분노에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 김영승은 아니 그의 시는 역설적으로 윤리적이며, 투명하며,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다.

 

때려잡은 개구리

누군가를 이처럼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워질 때가 오면

그 마음과 더불어

나는 죽어 버리리라

 

그리고,

시인은 또 반성하고 참회하고야 만다.

 

때려죽이고 싶도록 미운 나.

 

김영승의 시를 읽으면 독자들은 투명한 슬픔에 가슴이 미어진다.

진짜 자기 자신,

이것만 없다면 편하게 살 텐데.

 

라캉의 말대로 실재가 밖으로 나오면 너무 위험하다.

나는 ‘나’를 잘 숨겨야 한다.

 

그런데 개구리는 더 이상 구워먹지 말자.

옛날엔 많이 먹었는데

개구리의 생명권을 존중하자.

그리고 예전에 개구리 왕눈이를 보며 얼마나 즐거웠던가.

 

개구리 왕눈이와 여자친구 아로미

 

개구리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는 아로미와 왕눈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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