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병률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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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병률 <살림>

by 브린니 2020. 7. 20.

살림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오느라구요

 

하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압정처럼 박아놓은 별의 뾰족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내가 전에 말했던가요

 

오늘도 새벽에게 나를 업어다달라고 하여

첫 별의 불꽃에서부터 끝 별의 생각까지 그어놓은

큰 별의 가슴팍으로부터 작은 별의 멍까지 이어놓은

헐렁해진 실들을 하나하나 매주었습니다

 

오늘은 별을 두 개 묻었고

별을 두 개 캐냈다고 적어두려 합니다

 

참 돌아오던 길에는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조금 바짝 깎아주었습니다

 

                                                             ―이병률

 

 

【산책】

손톱달을 볼 때 기분이 맑아진다.

어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기분이랄까.

귀를 후벼주는 느낌이랄까.

 

손톱달의 손톱이 자라면 점점 반달이 된다.

반달이 살이 찌면 보름달이 되고,

보름달이 뜨면 불길하다.

 

그러므로 손톱달의 손톱이 더 자라기 전에 잘라주어야 한다.

오늘 시인은 아주 잘했다.

 

시인만이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

시인만이 우주의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시인만이 우주를 창조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로

신이 창조해 놓은 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요즘은 과학이 그 일을 대신하기도 하고, 우주비행사들은 다른 별들 사이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특권을 누린다.

 

그러나 과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시인은 가뿐히 날아올라,

홀로 아무런 비행장치도 없이 거뜬히 날아올라 우주를 내려다본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압정처럼 박아놓은 별의 뾰족한 뒤통수”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별과 별 사이에 실을 매달 수도 있다.

 

큰 별의 가슴팍으로부터 작은 별의 멍까지 이어놓은

헐렁해진 실들을 하나하나 매주었습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별을 우주의 모퉁이에 묻을 수 있고,

잠들어 있는 별을 깨워 빛나게 할 수 있다.

 

오늘은 별을 두 개 묻었고

별을 두 개 캐냈다

 

그렇게 시인은 시를 쓰면서 별들을 가지런히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시인이 빛나는 별들을 가지고 논다고 해서 살림살이가 더 넉넉해지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Luciano Pavarotti는 말년에 나의 예술에서 모자란 것이 있다면 바로 돈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명품 테너들과 세계를 돌며 돈을 벌었다.)

 

시인의 가슴에 별을 달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새벽까지 별을 보며 시를 쓰는 시인이여,

아름답도다!

 

갑자기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읊고 싶어지는 밤이다.

 

별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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