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김행숙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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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김행숙 <일요일>

by 브린니 2020. 7. 19.

일요일

 

 

며칠 늦게 일요일이 찾아왔다. 햇빛은 일요일의 뒤에 있었고, 몇 덩어리의 구름은 일요일의 느리고 느리고 부드러운 말씨.

 

그리고 내린 비는 일요일의 가득한 눈물처럼. 앞에 있는 햇빛처럼. 나는 토요일 밤의 송별회를 지나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 밤.

 

나쁜 일은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 멀리 흐르지 않고 가까이 향월 여인숙에서 잠이 들고 다음날 다시 새 이불을 덮는다. 나는 화요일 밤을 지나 수요일 아침 그리고 목요일 아침의 순서로 일요일을 기다린다.

 

일요일은 제멋대로 다리를 뻗고 두드리고 발을 주무른다. 일요일이 쓰고 온 넓은 모자가 넓은 그늘을 만들고, 나는 금요일 저녁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구두들이 글썽거리며 웃음을 물고 모여 있는 것을 본다. 금요일 저녁에서

 

발이 녹는다. 발부터 일요일까지. 토요일이라는 누구누구의 이름까지.

 

                                                                                          _ 김행숙

 

 

 

【산책】

들국화가 불렀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이란 노래가 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눈을 뜨고 하늘을 보니

짙은 회색 구름이 나를 부르고 있네

 

생각 없이 걷던 길 옆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나를 바라보던 강아지 이유 없이 달아났네

 

나는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었고

나는 작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었네

 

작은 빗방울들이 아이들의 흥을 깨고

모이 쪼던 비둘기들 날아가 버렸네

 

달아났던 강아지 끙끙대며 집을 찾고

스며들던 어둠이 내 앞에 다가왔네

 

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 한 없이 걸었고

나는 빗속으로 들어가 마냥 걷고 있었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예쁜 비가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 포근한 밤이 왔네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예쁜 비가 오고 포근한 밤이 온다.

 

나쁜 일은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 멀리 흐르지 않고 가까이 향월 여인숙에서 잠이 들고 다음날 다시 새 이불을 덮는다.

 

나쁜 일은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 같은 날들,

이런 날들이 계속 되기를 비는 것이 인생 아닐까.

 

며칠 늦게 일요일이 찾아왔다. 햇빛은 일요일의 뒤에 있었고, 몇 덩어리의 구름은 일요일의 느리고 느리고 부드러운 말씨.

 

일요일은 항상 며칠 뒤에 온다.

일요일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요, 삶이다.

 

햇빛은 일요일의 뒤에서 비춰주고

구름은 일요일의 느리고 부드러운 말씨로 예쁜 비를 내린다.

 

그리고 포근한 밤이 온다.

혹은 따뜻한 봄이 온다.

 

일요일은 늦잠으로 오후만 있어도 된다.

햇빛이 반만 있어도 포근하다.

눈물같은 비가 창에 가득해도 좋다.

새 이불을 덮고 화요일까지 잘 수 있을까.

 

일요일은 상상을 부른다.

쉼, 휴식, 힐링.

 

그런데 일요일은 항상 내일이다.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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