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병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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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병률 <사람>

by 브린니 2020. 7. 16.

사람

 

 

사람이 죽으면

선인장이 하나 생겨나요

 

그 선인장이 죽으면

사람 하나 태어나지요

 

원래 선인장은 널따란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이 가시가 되었지요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선인장은 가시를 내밀고 사람만큼만 살지요

 

아픈 데가 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 손을 올리는 성자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할 일이 있겠으나 할 일을 하지 못한 선인장처럼

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될지를 생각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살지요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사람은 태어나 선인장으로 죽지요

그리하여 사막은 자꾸 넓어지지요

 

                                                           ―이병률

 

 

【산책】

사람이 숨어 있으면 고슴도치와 같다고 말한다.

선인장은 고슴도치와 같이 가시를 가지고 있지만 움직이지 않아서 더 고요하다.

 

가시!

 

찌르려는지 막으려는지

 

고슴도치의 가시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선인장의 가시는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일까.

 

선인장의 식물성.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막에서도 선인장은 살아 있다.

가시를 세우고, 바람과 모래와 싸우는 것일까.

 

인간은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고, 공룡과 같은 맹수는 멸종했지만 인간은 지금까지 존재한다.

반드시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지혜롭게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나 살아남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일까.

 

장미도 가시를 가지고 있다.

자신을 보호하려고 지녔다기보다는

붉은 꽃을 더 돋보이게 하려고 가시를 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장미의 가시는 생존본능 따위와는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장미의 가시는 미학적인 데가 있다.

 

릴케는 장미 가시에 찔려죽었다고 한다.

진실이든 아니든 뭐, 상관없다.

죽음치고는 지나치게 미학적이다.

 

미학적인 것은 정말 쓸데가 없다.

아무 소용이 없고. 그저 미학적일 뿐이다.

그래서 미학이다.

 

아무튼 모든 가시의 공통점은?

 

세상 모든 가시들은 스며서 사람을 아프게 하지요

 

찔리면 아프다는 것이다.

말에 박혀 있는 가시는 정말 치명적이다.

 

인간의 말에는 가시가 수없이 박혀 있다.

말의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일까, 남을 공격하려는 것일까.

 

실패하지 않으려 가시가 되지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말로 싸우는 사람들,

지지 않기 위해 말에 독한 가시를 박아서 날리는 사람들.

 

인간이 만드는 사막.

선인장이 되는 사람들.

선인장이 살기 위해 더 넓은 사막이 자꾸 생겨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막이 있다.

선인장, 가시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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