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이병률 <자상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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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이병률 <자상한 시간>

by 브린니 2020. 7. 14.

자상한 시간

 

 

의자가 앉으려 하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서로 아프게 하여

스스로 낫기도 하겠다는데

나는 한사코 혼자 앓겠다는 사람 옆에 있다

 

의자는 의자에 앉으려 애쓰고 있지만

꽃과 이 사람은

무엇을 애써 누르려 한 적도

살겠다고 애쓰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어둠이 소금처럼 짠 밤에

병이란 것과

병 아닌 것을 아는 시간이 뜨겁게 피었다

 

의자를 의자에 앉힐 수 없어

풀과 나무들과

공기들의 땀 냄새를

마시고 녹이는 사이

 

그 바깥은

죽을 것처럼 맞춰진 시간들이

다시 죽을 것처럼 어긋나고 있었다

 

까치야

소용없단다

이 밤에 아무리 울어도

기쁜 일은 네 소관이 아니란다

 

                                                 ―이병률

 

 

【산책】

죽어가는 사람을 밤새 옆에서 기다린 적 있는가.

무엇을, 죽음을?

그가 낫기를?

 

의자가 의자에 앉으려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들 가운데

단연 최고는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불가능이다.

죽음을 막는 것도,

심지어 죽는 것도,

불가능성에 속해 있다.

 

접근 불가한 것

그것이 죽음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이란 불가능하다.

 

병도 유사하다.

병에 걸리면 앓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약을 먹어도,

주사를 맞아도,

시술이나 수술이나 그 어떤 것도

병을 앓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당장은.

다 앓고 나야 약도, 주사도, 수술도 효과를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병은 살아 있는 동안 겪는 것이어서 불가능성의 바깥에 있다.

바깥에 있는 것들은 무섭지 않다.

 

죽음처럼 인간 속에 있는데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일 때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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