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시간
의자가 앉으려 하고 있다
사람은 사람을 서로 아프게 하여
스스로 낫기도 하겠다는데
나는 한사코 혼자 앓겠다는 사람 옆에 있다
의자는 의자에 앉으려 애쓰고 있지만
꽃과 이 사람은
무엇을 애써 누르려 한 적도
살겠다고 애쓰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어둠이 소금처럼 짠 밤에
병이란 것과
병 아닌 것을 아는 시간이 뜨겁게 피었다
의자를 의자에 앉힐 수 없어
풀과 나무들과
공기들의 땀 냄새를
마시고 녹이는 사이
그 바깥은
죽을 것처럼 맞춰진 시간들이
다시 죽을 것처럼 어긋나고 있었다
까치야
소용없단다
이 밤에 아무리 울어도
기쁜 일은 네 소관이 아니란다
―이병률
【산책】
죽어가는 사람을 밤새 옆에서 기다린 적 있는가.
무엇을, 죽음을?
그가 낫기를?
의자가 의자에 앉으려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들 가운데
단연 최고는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불가능이다.
죽음을 막는 것도,
심지어 죽는 것도,
불가능성에 속해 있다.
접근 불가한 것
그것이 죽음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이란 불가능하다.
병도 유사하다.
병에 걸리면 앓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약을 먹어도,
주사를 맞아도,
시술이나 수술이나 그 어떤 것도
병을 앓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당장은.
다 앓고 나야 약도, 주사도, 수술도 효과를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병은 살아 있는 동안 겪는 것이어서 불가능성의 바깥에 있다.
바깥에 있는 것들은 무섭지 않다.
죽음처럼 인간 속에 있는데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일 때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죽음을.
'독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시 산책] 심보선 <형> (0) | 2020.07.15 |
---|---|
[명시 산책] 시라이시 가즈코 <손바닥> (0) | 2020.07.15 |
[명시 산책]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곡예사> (0) | 2020.07.14 |
[명시 산책] 프랑시스 퐁주 <테이블> (0) | 2020.07.13 |
[명시 산책] 이병률 <사랑> (0) | 2020.07.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