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산책]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곡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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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명시 산책]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곡예사>

by 브린니 2020. 7. 14.

곡예사

 

 

공중그네에서 공중그네로.

북소리가 멈춘 뒤 갑자기 찾아든

죽음과도 같은 적막 속에서.

느닷없이 놀란 공기를 헤집고 관통하면서.

또다시 추락의 타이밍을 비껴난

육신의 무게보다 한 템포 더 빠르게.

 

그는 솔로였다. 아니 솔로보다 더 작고 부족한 존재였다.

절름발이였기에, 날개를 잃어버렸기에.

이 모든 결핍은 더욱더 크나큰 장애가 되어

마침내 그는 깃털 하나 없이 적나라한 시선 속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풀쩍,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힘겹지만 가볍게,

끈질긴 민첩함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영감 속에서.

너는 아느냐, 비행의 순간을 낚아채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숨죽이고 기다려야 했는지.

너는 아느냐. 자신이 지닌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에서 발끝까지 얼마나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만 했는지.

 

너는 아느냐,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느냐,

그가 얼마나 절묘하게 자신의 체형을 짜 맞추고 조립했는지를.

흔들리는 세상을 손아귀에 포착하기 위해

그는 계획에 맞춰 새로이 제작된 양팔을 앞으로 곧게 뻗었다.

 

바로 그 순간, 벌써 화살처럼 저만치 달아나버린 그 짧은 찰나에

그의 두 팔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위대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폴란드, 1923-2012)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산책】

sky walker

공중을 걷는 자.

곡예사는 공중을 나는 사람인가.

 

몽유병에 걸리면 공중을 걷거나 나는 기분일까.

잠시라도 공중을 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팔다리 어느 한 군데도 걸치는 데 없이 공중에 잠시 떠 있는 기분은.

 

마침내 그는 깃털 하나 없이 적나라한 시선 속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풀쩍,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시선 속에서 날다니.

떨어질 것은 기대하는 시선,

더 높이 날기를 바라는 시선,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를 기다리는 시선,

더 높이 날아 천장을 뚫고 사라지기를 상상하는 시선,

적나라한 인간들의 시선,

그 시선에 맞아 벌거벗는 곡예사.

 

치밀하게 계산된 영감 속에서.

너는 아느냐, 비행의 순간을 낚아채기 위해

……

머리에서 발끝까지 얼마나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만 했는지.

 

하늘을 걷는 자가 몽유병자가 아니라면

떨어지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계산한다고 한들

공중에서 벌어지는 일을 땅에서 계산한들 딱 들어맞을까.

 

그래서 영감이 필요하다.

단순한 번쩍임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그러나 나를 벗어나 외부로부터 도달하는 영감.

신으로부터 오는 영적인 느낌들?

 

그네를 잡으려고 곡예사가 손을 내뻗는 순간

한 치 앞에서 그네가 조금 빨리 공중으로 빨려들고.

 

바로 그 순간, 벌써 화살처럼 저만치 달아나버린 그 짧은 찰나에

그의 두 팔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위대했다.

 

그 찰나 곡예사는 진정으로 sky walker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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