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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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by 브린니 2020. 7. 22.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장 12절)

 

천국은 침노를 당하며, 침노하는 자는 빼앗는다는 이 구절은 ‘천국’이라는 평화롭고 신성한 공간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고개를 갸웃하게 합니다.

 

먼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는 구절을 보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여 천국이 시작되었다고 외치던 요한이 활동하던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천국이 확장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천국의 확장은 ‘침노를 당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에 해당하는 원어 ‘비아제타이’는 수동태와 중간태로 다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를 수동태로 해석하면 천국이 어떤 강한 힘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거칠게 강탈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습격을 받아 강탈당하는 것처럼 정복되어 빼앗기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를 중간태로 해석하면 ‘힘으로 진격하다, 휘몰아쳐 오는 바람처럼 힘으로 떠밀려 제 갈 길을 가다, 격렬하게 빼앗다’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NIV 성경에서처럼 “하늘 나라가 힘차게 뻗어나가고 있다(the Kingdom is forcefully advancing)”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거룩한 능력과 권위로 이 땅에 임하게 된 천국은 침략이나 약탈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열정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또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는 구절에 대해서도 Hill, Meier, Hobbs 등의 학자들은 앞 구절의 ‘침노당하다’라는 동사를 수동형으로 보면서 그 연장선 상에서 하늘나라가 맹렬하게 공격을 당하고 있고 난폭한 자들이 그 나라를 강탈하고 있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Pamment, Kummel과 같은 학자들은 ‘침노당하다’를 중간태로 해석하면서 이 구절 역시 ‘침노하는 자’라기보다는 ‘용기있는 자, 강한 자’로 이해하여 용기와 강한 집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을 누릴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즉, 소심하거나 게으르거나 쉽게 낙담하여 믿음에서 돌아서는 사람은 천국을 얻을 수 없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침노하는 자’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노력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동원하는 강하고 용기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빼앗느니라”라는 말의 원어는 ‘하르파주신 아우텐’으로 무엇을 얻기 위해서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움켜잡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루어주신 유업, 이미 이 땅에 임한 천국을 얻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 기울여 애쓰고, 이것이 아니면 살아갈 희망이 없는 것처럼 인생의 초점이 거기에 맞춰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토록 간절하게 천국을 원할까요? 지금 현재 먹고살 만하고 만족스러운 사람보다는 살기 팍팍하고 고난이 계속되며 세상적으로는 살아갈 희망이 없는 힘겨운 사람이 더욱 천국을 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나 창기, 병자, 죄인들이 예수님이 이루어놓으신 천국의 소망을 더욱더 강렬하게 갖게 되나봅니다. 예수님은 그 이치를 이미 알고 계셨기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 복병처럼 숨어드는 고난과 어려움들이 왜 유익한지 이해가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현실의 아픔은 천국에 관한 더 강렬한 소망을 갖게 합니다.

 

물론 그것은 죽고 난 다음에 가는 천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천국이 임했다고 말씀하셨고, 그 천국이 확장되어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어떻게 천국이 임하고 있나 돌아보게 됩니다. 한 신실한 목사님이 인류의 역사는 갈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고 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좋지 않은 뉴스들을 보면서 “말세야, 말세”라고 말하며 왜 이리 부도덕하고 악한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불평등하게도 노예가 있었고, 여성과 아동의 권리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를 생각해 보면 현재 인간의 존엄성은 훨씬 더 격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 세계가 화염에 불탔던 세계 1,2차대전이 지난 지 아직도 100년이 지나지 않은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나와 지금 이 정도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 사이의 불평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자 이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지구가 아파 신음하며 이상기후가 발생되고 시베리아에 산불이 나는 등 자연이 해방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시위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지금도 빈부의 차이로 인한 고통,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사회 계층 사다리가 무너져 빈곤이 악순환되는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우리가 침노하여 제도와 사고방식을 천국화해야 하는 과제들입니다.

 

이 땅의 문제들은 도외시한 채 죽어서 가는 천국만 흠모하고 있다면,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던 것처럼 이 땅에 임한 천국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이 땅에 천국이 임하였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이미 왔지만 아직 오지 않은 천국을 완성해가는 뜨거운 사명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너희는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제자로 삼으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천국을 완성해가는 열정적인 그리스도인들을 키워내라는 말씀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신교도로 불린 우리들은 ‘프로테스탄트’ 즉 ‘저항하는 자’입니다. 잘못된 제도와 불평등과 차별과 악습의 대물림에 대해서 저항하고 사력을 다해 올바른 길을 만들어감으로써 천국을 이 땅에 확장시키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제시대에 3.1운동을 주도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그야말로 억압과 압제에 맞서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숨을 바쳐가며 그들이 외친 것은 우리 민족만의 해방이 아니라 천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인간의 구원과 해방의 외침이었습니다.

 

신분의 구분이 있었던 조선 말에서 일본의 압제에 저항하며 외친 그들의 외침은 단지 일본에게서 벗어나는 데만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며,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은 제국주의적 억압뿐 아니라 신분 계급의 어떠한 차별로도 얽매일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한 데 있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은 기독교 복음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얻었으며, 이름이 없었던 여성에게도 이름이 주어지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각 개개인이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된 것은 천국이 임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떤 천국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아직도 이 땅의 세속적인 삶은 어쩔 수 없고, 죽어서 가는 천국이나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기독교인은 이중국적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땅의 세속국가에 속해 있으나 본질은 천국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아직도 예수님의 오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은 위험성을 자아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 천국이 임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 천국이 이 땅 위에 확장되었다는 뜻이며, 우리 기독교인들은 죄 많고 세속적인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거룩하게 만들어갈 것인지, 어떻게 서로를 존엄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지 뜨겁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이기심을 이겨야 하며 타인을 향해 내 것을 양보할 수 있는 천국의 삶을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교회에 헌금은 반드시 내야 하고, 이 땅의 세속국가에서 내라고 하는 세금은 어떻게든 줄이려고 애쓴다면, 이 땅에서 천국을 확장하는 일은 요원할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일에 열심히 봉사하면서, 이 땅의 선거에는 무관심하고 정치는 무조건 더럽다고 비판만 할 뿐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침노하여 천국을 빼앗는 자가 아니라 게으르고 무관심하고 열정이 없어 천국의 침노를 무한정 연기시키는 행위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천국은 죽은 뒤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확장시켜가는 것임을 기억하고, 강한 신념과 좌절하지 않는 열정과 반드시 그 천국이 임해야만 하겠다는 가난한 심령으로 사모하며 작은 일부터 행동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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