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 <붉은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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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조용미 <붉은 시편>

by 브린니 2020. 7. 5.

붉은 시편

 

 

태초에 어둠이 있었다

어둠의 세계에 빛이 침입했다 사라지는 걸

우리는 하루라 부른다

빛은 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다

빛은 어둠에 속해 있다

어둠이 빛의 주인인 것처럼 내 몸이 나의 주인이 되어 버렸다

오색 헝겊이 내걸린 당집 근처,

새벽빛을 앞지르는 황도광처럼

까마귀들이 죽은 나뭇가지마다 가득

빛을 뿜으며 앉아 있다

병炳 깊은 몸이 한 올 한 올 구분해내는 빛은 대침처럼 머리에 와 박히고

물색을 두른 나무들은 모두

우두커니

희거나 검거나 붉었다

흑점이 움직일 때 둥글게 드러나는 코로나,

누워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책력을 한 장 한 장 더듬어보는 늦은 밤

더 이상

선과 악이 분명치 않다

 

―조용미

 

* 코로나 : 태양 대기(大氣)의 가장 바깥층에 있는 엷은 가스층. 온도는 100만 ℃ 정도로 매우 높다. 일식이나 월식 때 해나 달 둘레에 생기는 광환으로서 개기 일식 때에는 맨눈으로 볼 수 있으며, 보통 때에는 코로나그래프 따위로 관측할 수 있다.

 

 

【산책】

빛을 선이라고 부르고 어둠을 악이라고 비유하는 것을 시는 거부한다.

까마귀의 검은 색을 빛이라고 부른다.

 

태초는 빛이 생겨날 때를 일컫는 말일까. 태초는 어둠뿐인 태초 이전을 말하는 것일까.

무엇인가가 태어날 때를 탄생이라고 부르는데 빛의 탄생이 태초인가,

빛도 없는 온통 어둠인,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것이 태초인가.

 

“어둠의 세계에 빛이 침입했다 사라지는 걸 우리는 하루라 부른다”

 

사라진 빛은 어디로 갔을까.

빛이 다시 되돌아오면 우리는 그것을 내일이라고 부르리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 사이, 빛이 사라진 동안의 시간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빛이 없는 시간을 밤이라고 부른다면 밤은 하루에 속하는가, 하루 밖에 있는 것인가.

 

어둠은 빛의 주인이고,

몸은 ‘나’의 주인이다?

 

무엇이 존재를 주관하는가.

무엇이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는가.

 

세계는 어둠이 전부이고, 빛은 한 부분이었다가 사라지는 것인가.

몸이 전부인데 나라는 존재가 거기 잠깐 깃들어 살다가 떠나는 것인가.

 

세계는 악으로 가득 차 있는데 선이 잠시 침입했다가 물러나는 것인가.

죽음이 오면 ‘나’는 몸을 떠나 어디로 가는 것인가.

 

몸 밖은 우주인가.

내 영혼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저런 생각에 7월의 더운 밤이 더 덥고, 덜 어둡다. 덜 깊고, 좀 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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