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연
태풍이 지나가고 가시연은 제 어미의 몸인 커다란 잎의 살을 뚫고 물속에서 솟아오른다
핵처럼 단단한 성게 같은 가시봉오리를 쩍 가르고
흑자줏빛 혓바닥을 천천히 내민다
저 끔찍한 식물성을,
꽃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꽃인 듯한
가시연의
가시를 다 뽑아버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나는 오래 방죽을 서성거린다
붉은 잎맥으로 흐르는 짐승의 피를 다 받아 마시고 나서야 꽃은
비명처럼 피어난다
못 가장자리의 방죽이 서서히 허물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금이 가고 있는 그 소리를
저 혼자 듣고 있는
가시연의 흑자줏빛 혓바닥들
―조용미
【산책】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연꽃에도 가시가 있다.
가시연.
아름답기보다는 흉물스런 꽃대를 가지고 있어서 에일리언에 나오는 외계생물의 촉수달린 혓바닥처럼 보인다.
꽃인데 아름답지 않는데 그것을 꽃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이 꽃의 정체성일까.
꽃은 모두 아름다워야 할까.
꽃봉오리보다 가시가 정체성이라면.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격성이 정체성이라면.
가시연의 공격성 때문일까.
방죽에 금이 가고 무너질 준비를 한다.
아니다.
가시연의 생명성이 태풍을 뚫고 나와 핀 것처럼
거대한 방죽도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도 그렇다.
그의 외모가 수려하지 않아도
지능이 높거나 특별히 잘 하는 게 없어도
생명력으로 산다.
오직 생명력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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