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 <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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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조용미 <가시연>

by 브린니 2020. 7. 6.

가시연

 

 

태풍이 지나가고 가시연은 제 어미의 몸인 커다란 잎의 살을 뚫고 물속에서 솟아오른다

핵처럼 단단한 성게 같은 가시봉오리를 쩍 가르고

흑자줏빛 혓바닥을 천천히 내민다

 

저 끔찍한 식물성을,

꽃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꽃인 듯한

가시연의

가시를 다 뽑아버리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어 나는 오래 방죽을 서성거린다

 

붉은 잎맥으로 흐르는 짐승의 피를 다 받아 마시고 나서야 꽃은

비명처럼 피어난다

못 가장자리의 방죽이 서서히 허물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금이 가고 있는 그 소리를

저 혼자 듣고 있는

가시연의 흑자줏빛 혓바닥들

 

                                                      ―조용미

 

 

【산책】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연꽃에도 가시가 있다.

가시연.

 

아름답기보다는 흉물스런 꽃대를 가지고 있어서 에일리언에 나오는 외계생물의 촉수달린 혓바닥처럼 보인다.

 

꽃인데 아름답지 않는데 그것을 꽃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이 꽃의 정체성일까.

꽃은 모두 아름다워야 할까.

 

꽃봉오리보다 가시가 정체성이라면.

아름다움이 아니라 공격성이 정체성이라면.

 

가시연의 공격성 때문일까.

방죽에 금이 가고 무너질 준비를 한다.

 

아니다.

가시연의 생명성이 태풍을 뚫고 나와 핀 것처럼

거대한 방죽도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도 그렇다.

그의 외모가 수려하지 않아도

지능이 높거나 특별히 잘 하는 게 없어도

생명력으로 산다.

 

오직 생명력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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