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끄 프레베르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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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자끄 프레베르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by 브린니 2020. 7. 6.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광장의 벤치 위에

어떤 사람이 앉아

사람이 지나가면 부른다

그는 외안경에 낡은 회색옷

엽권련을 피우며 앉아 있다

그를 보면 안 된다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가 보이지도 않는 양

그냥 지나쳐야 한다

그가 보이거든

그의 말이 들리거든

걸음을 재촉하여 지나쳐야 한다

혹 그가 신호라도 한다면

당신은 그의 곁에 가 앉을 수밖에

그러면 그는 당신을 보고 미소 짓고

당신은 참혹한 고통을 받고

그 사람은 계속 웃기만 하고

당신도 똑같이 웃게 되고

웃을수록 당신의 고통은 더욱 참혹하고

고통이 더 할수록 더욱 어쩔 수 없이 웃게 되고

당신은 거기 벤치 위에

미소 지으며 꼼짝 못하고 앉는다

곁에는 아이들이 놀고

행인들 조용히 지나가고

새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고

당신은 벤치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조용히

이 행인들처럼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나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자끄 프레베르(프랑스, 1900-1977)

 

 

【산책】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 바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고 말하고 있다.

 

절망.

희망 없음.

희망이 끊긴 상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혹은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아무것도 바라지 못하는.

 

절망은 끝이다.

절망은 끝은 아니지만

절망이 끝을 가지고 온다.

 

절망은 끝이 아니지만 막다른 골목이다.

더 이상,

그 이상,

좀 더,

이런 것이 없다.

 

절망에는 놀 수 없고,

지나갈 수 없고,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놀 수 없는 것보다

지나갈 수 없는 것보다

나아갈 수 없는 것보다

그것을 알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 절망이 아닐까.

 

당신은 안다.

당신이 절망과 친구가 되어 벤치에 앉아 있다는 것을.

 

계속 여기 앉아 있다면 죽음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당장 벤치에서 일어나 걸어가라.

 

"네 침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마태복음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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