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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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병률 <이 안>

by 브린니 2020. 7. 7.

이 안

 

 

혹시 이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안에 있다

안에 있지 않느냐는 전화 문자에

나는 들킨 사람처럼 몸이 춥다

 

나는 안에 살고 있다

한시도 바깥인 적 없는 나는

이곳에 있기 위하여

온몸으로 지금까지 온 것인데

 

문자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혹시 여기 계신 분이 당신 맞습니까

 

나는 여기 있으며 안에 있다

안쪽이며 여기인 세계에 붙들려 있다

 

나는 지금 여기 있는 숱한 풍경들을 스치느라

저 바깥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여기 있느냐 묻는다

 

삶이 여기에 있으라 했다

 

                                                         ―이병률

 

 

【산책】

하이데거는 인간이 탈구된 상태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탈구, 몸의 일부가 몸 밖으로 빠져나온 상태를 말한다.

멀쩡한 사람이 왜 탈구가 되었다고 말하는가.

 

인간의 정신이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는 자신의 바깥에 있는 것을 말한다.

내속의 무언가가 자신의 밖으로 빠져나간 상태.

넋이 나간 상태를 말하는가?

 

“나는 안에 살고 있다

한시도 바깥인 적 없는 나는

이곳에 있기 위하여

온몸으로 지금까지 온 것인데“

 

하이데거나 라캉이나 지젝은

우리 속에 있으나 없는 것 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결핍으로 남아 있지만 잉여인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을 프로이트 식으로 무의식이라고 부르든,

라캉 식으로 실재라고 부르든.

 

우리가 분명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는 나라는 존재

그러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되는 순간이 있다.

 

나도 알 수 없는 진짜 내가 따로 있는 듯한 느낌.

분명 안에 있는데 바깥에 있는 듯한

나를 빠져 나가 나보다 먼저 나의 장소에 있는,

잉여.

그래서 내 속에서는 결핍인 그 무엇.

 

나는 안에 있는데

누군가 안에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안에 있으며 여기 있는데

여기 있는 것이 ‘나’인지 또 묻는다

 

나는 여기 말고 바깥을 생각한 적이 없는데

여기 있느냐고 묻는다.

 

혹시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바깥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혹시 여기, 안에 존재하는 것이 다른 누구인가?

 

나는 반쯤 탈구한 채 바깥 어디쯤 건너고 있는가.

나의 대부분은 여기, 안에 있는데.

 

나의 장소는 어디인가?

진짜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신비로운 질문이다.

여기 있습니까?

여기 있는 게 당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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