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끄 프레베르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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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자끄 프레베르 <어린 시절>

by 브린니 2020. 7. 4.

어린 시절

 

 

오 슬프기도 해라 어린 시절은

지구는 돌기를 그치고

새는 이제 노래하지 않으려 하네

태양은 빛나지 않으려 하고

모든 풍경이 굳어 버렸네

 

비오는 계절은 끝나고

비오는 계절은 다시 시작하고

오 슬프기도 해라 어린 시절은

비오는 계절은 끝나고

비오는 계절은 다시 시작하고

 

검뎅이 빛 늙은이들이

그들의 낡은 저울을 들고 자리잡네

지구가 돌기를 그칠 때

풀이 돋아나지 않으려 할 때

늙은이가 재채기를 한 탓이라네

늙은이 입에서 나오는 건 무엇이나

못된 파리들이나 낡은 영구차들뿐

 

오 슬프기도 해라 어린 시절은

우리는 안개 속에서 숨이 막히네

늙은 늙은이들 안개 속에서

 

그들이 어린 시절로 다시 떨어지면

그들은 어린 시절 위로 떨어져 내리네

어린 시절은 무방비 상태라

쓰러지는 건 언제나 어린 시절

오 슬프기도 해라 어린 시절은

슬프고도 슬픈 우리들의 어린 시절

비오는 계절은 끝나고

비오는 계절은 다시 시작하고.

 

―자끄 프레베르(프랑스, 1900-1977)

 

 

【산책】

어린 시절 비가 많이 오는 날 친구네 집에서 우산도 없이 돌아온 기억이 있는가.

집에 도착했을 때 온몸이 비에 홀딱 젖어서 생쥐 꼴이 되고,

옷도 흠뻑 젖어서 벗을 수조차 없게 되고,

목이 붓고, 머리가 띵하고,

목욕을 하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에 빠져 들었던 기억.

 

꿈속에서도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저녁이 밀려와 어둠이 깔리는 놀이터에서 혼자 남아 끝까지 흙장난을 한 적이 있다.

엄마가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

노을이 짙게 드리우고

어둠이 점점 짙어오는데……

왠지 설레고 두렵고 불안한 느낌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혼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나는 왜 여기 서 있는 걸까,

질문하게 되면서부터 성장하게 되는 것일까.

 

어른이 되어서 뒤를 돌아보는 어린 시절

과연 행복했을까.

 

어쩌면 기억에서 모두 지워졌을 어린 시절.

과연 아름다웠을까.

 

오 슬프기도 해라 어린 시절!

정말 슬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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