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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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장정일 <햄버거에 대한 명상>

by 브린니 2020. 7. 3.

햄버거에 대한 명상

ㅡ 가정 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면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 1/2큰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 1/2

달걀 2

빵가루 2컵

소금 2 작은술

후추가루 1/4 작은술

상치 4잎

오이 1

마요네즈 소스 약간

브라운 소스 1/4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ㅡ 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ㅡ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진다

이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명상의 첫 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튼 좀 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 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 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한 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놓는다

소리 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추 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네 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일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일분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ㅡ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렌지가 필요하다 ㅡ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에까지 완전히 익힌다 . 이때

당신 머릿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치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치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 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장정일

 

【산책】

먹방이 유행이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먹방 시의 원조이다.

 

시는 모든 것은 원조이다.

예술은 과학보다 앞선다.

SF소설이나 미래영화는 과학보다 앞선 상상력을 보여준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햄버거 래시피까지 보여주면서 먹는 것(음식)을 명상의 오브제로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먹는 것을 상상하는 것보다 쉬운 일도 없고, 행복한 일도 없없다.

 

먹방, 남이 먹는 것을 보는 것.

과연 즐거울까? 자신이 먹어야 행복하지 남이 먹는데 왜 기분이 날까? 감정이입하기 때문일까?

지금은 다른 사람이 먹지만 곧 내가 먹을 것을 상상하며 즐거울까.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가?

(갑자기 엄마의 심정이라도 된 것일까?)

 

언젠가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음식이 나오더니,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도 먹방이 점령을 했다.

먹방이 관음증의 일부일 수도 있고, 쾌감을 많이 불러 일으켜서 인가?

 

MBC TV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여가수가 곱창을 맛있게 먹었다고 곱창협회에서 감사장을 보냈다. 매출이 많이 올라서이다.

먹방을 보고 나면 사람들이 그 음식을 찾게 되는 모양이다.

 

블로그에도 먹방 사진과 맛집 소개가 인기다.

먹는 것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서 그럴까?

 

먹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가?

먹는 행복이 가장 클지도 모른다.

사는 게 다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일까.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것이 인생의 목적인가.

 

아무튼 먹는 것은 즐겁고 좋고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음식을 두고 명상하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음식 명상의 최초의 시

먹방 원조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은 유쾌하고 꽤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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