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안드레예브나 마흐마또바 <그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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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안나 안드레예브나 마흐마또바 <그는 세상에서>

by 브린니 2020. 7. 3.

그는 세상에서

 

 

그는 세상에서 세 가지를 좋아했었네

저녁 예배 때 찬송, 하얀 공작들

그리고 아메리카의 낡은 지도를 좋아했었지.

그는 아이들이 우는 것을 싫어했고,

나무딸기 차와

여자의 히스테리를 싫어했었지.

…… 그런데 나는 그의 아내였었네.

 

―안나 안드레예브나 마흐마또바 (러시아 1889-1966)

 

 

【산책】

한 남자가 있다.

경건하고, 우아하고, 먼 나라 여행을 꿈꾸는.

한 남자가 있다.

짜증을 잘 내고, 차보다는 커피나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남자라면 사랑하고 싶은가?

이 남자와 함께 살 수 있는가?

 

그런데 한 여자가 있다.

이 남자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 남자가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결정적으로 이 남자 자체를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사랑했으며

아마도 결혼했으며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그 남자의 아내였었던.

 

그 남자가 죽었는지,

그 남자와 헤어졌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혼자 남은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그 남자를 기억하는 방식은 아주 사소하지만 정확하다.

그 남자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서 그 남자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남자는 말끔한 신사이고, 귀족풍의 남자다.

그러나 그는 작고,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여성적인 것들을 혐오한다.

 

전근대적인,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남성상.

그 남자의 잘못은 아니겠지만 왠지 현대엔 맞지 않는 남자다.

 

그러나 그 남자를 사랑하고 아내로 살던 여자는……?

이 시대에 아직 많은 여성들은 이런 남자를 애인으로 남편으로 두고 있다.

 

이것을 비극이라고 부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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