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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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by 브린니 2020. 7. 2.

*평신도 성경 묵상은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묵상입니다. 화석화된 동어 반복의 신학적 용어들은 때때로 우리 삶의 부조리한 고통을 위로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제적인 깨달음과 설명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나눔을 하기 원합니다.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다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마태복음 10장 10절)

 

땅에서 우리의 삶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행과 같습니다. 천상병 시인은 죽을 때가 되었을 , 땅의 삶을소풍으로 표현하며, “ 놀다 간다 말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의 역시 땅의 삶이 여행과 같지만, 우리에게는 단지 놀다 수는 없는 소명이 있습니다.

 

우선은 안에 성령께서 부어주신 그리스도의 씨앗이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은 사랑을 부어주는 삶을 살아야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마태복음 10 10절의 말씀은 예수님이 열두 제자에게 성령을 부으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도록 보내실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제자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해당됩니다. 열두 제자에 의해서 초대 교회 시절에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순교하였을 , 이미 그들의 사명은 복음을 전달받은 우리에게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승천하기 전에 모든 이들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기에 본문의 말씀은 비단 열두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사도의 소명이 그때 한정적으로 부어진 것이므로, 우리와는 상관이 없고 몇몇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귀신을 쫓고 나병환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아무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기적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제자의 삶의 근본적인 바른 자세까지 우리가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도에게만 주어진 말씀으로 치부하고 제자의 삶을 따르려 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예수님은 악하다 하실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자기 욕심과 욕망대로 살고 싶어서, 그런 사도에게 주어진 거라고 겸손한 말함으로써 도리어 그렇게 살지 않고 있는 자신을 비겁하게 합리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의 능력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자의 바른 삶의 자세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행에서 가져야할 바른 태도에 대해서 위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배낭은 음식이나 식량을 가지고 다닐 쓰는 것으로 가죽이나 거친 결을 가진 천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여행 도중에 식량을 공급받을 것이기 때문에 따로 이런 배낭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도 먹을 것을 걱정해서 따로 배낭과 같은 자금줄을 마련하는 행위로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매일 일을 하고 월급을 받거나 수익을 내어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일꾼으로서 먹을 것을 받는 것처럼 매우 정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따로 배낭을 두둑히 채우기 위해서 부동산 투기나 비트코인, 주식 등에 지나치게 몰두한다면, 자신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것입니다.

 

옷을 갖지 말라고도 하셨습니다. 여행을 때는 밤낮의 기온 차가 커서 반드시 옷이 하나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추위를 피하기 위한 이외에 여분의 옷은 짐이 뿐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가 벌로 수는 없습니다. 그날 그날의 모임과 행사, 쓸모에 따라 여러 벌의 옷이 필요한 것이 우리 삶입니다.

 

따라서 필요한 옷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신실한 목사님은 중저가 브랜드의 옷을 입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현명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타인들을 위축시킬 만큼의 비싼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신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유대 전통에서 맨발로 다니는 것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현재 착용하고 있는 외에 여분을 준비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할 있습니다.

 

역시 앞에서 살펴본 옷과 같은 의미에서 생각해 있습니다. 흔히 셀럽들이 고가의 브랜드 신발을 하나에 가득 채워넣고 자랑스럽게 찍은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것을 봅니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도 예수님의 말씀과는 반대인 모습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실제로 화려한 성공의 이미지로 전달하고 있는지 신기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케 함으로 더욱더 강한 믿음으로 연단하시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 삶이 성령 받은 제자들의 삶처럼 순전한 하나님의 공급으로 살아갈 없다 해도 삶의 자세는 그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필요한 만큼의 물건을 구매하고, 필요 이상의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 소비를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양심을 더럽히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에게 지도자들에 대한 분별력을 주기도 합니다.

 

A.D. 100~120 경에 기록된 ‘12사도훈(Didache)’에는여러분에게 주의 사도를 주님처럼 환영해야 합니다. 만약 사도가 3일을 머물고자 한다면 그는 거짓 사도임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사도가 떠나고자 여러분은 그가 다음 거처에 이를 때까지 필요한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만약 돈을 요구하게 되면 자신이 스스로 거짓 사도임을 드러내는 꼴이 것입니다라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만약 사도가 3 이상 머물려고 한다면 그는 이미 사도로서의 사명보다는 현재 머무르는 곳의 안온함에 젖어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에게 필요한 양식을 준비할 의무가 있지만, 그가 먼저 돈을 요구하면 그는 거짓 사도임이 드러나게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 중에 혹시 이런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특성상 교회를 개척하면 원로 목사가 때까지 수십 년간 교회의 담임을 맡는 것이 상례이지만, 과연 이런 형태가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게다가 자녀에게까지 목사직을 대물림한다면 더더욱 심각한 수준이라고 있을 것입니다.

 

돈을 요구하는 것은 거짓 사도임을 드러내는 꼴이라는 교훈도 반드시 기억해야 것입니다.

 

반대로 성도의 입장에서도 혹시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박한 순례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자꾸 배낭을 채우려 하고, 고가의 브랜드를 탐내고, 소유물 속에 안온하게 머물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것입니다.

 

주님 앞에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지지 못했다고 불안에 떨지 않겠습니다. 가지려고 욕심 내지도 않겠습니다. 그저 조용히 오늘 일을 정직하게 하며, 오늘처럼 내일도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을 기도할 뿐입니다.”라고 고백하게 되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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