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간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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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윤학 <간척지>

by 브린니 2020. 7. 1.

간척지

 

 

내 가슴속에는 수문이 있다

내 가슴을 가로질러가는 방파제 위로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덤프트럭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겨울의 한낮,

방파제 아래에 앉아 한가로이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수문 위로 올라가

만조의 바다를 바라보곤 한다

 

민물도 갯물도 아닌 넓은

웅덩이를 차지한 썩어가는 물, 아직도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버려진 간척지, 내

가슴속의 웅덩이의 물은

출렁거리고 있다

 

이걸 어떻게 퍼낼까

이걸 우려내는 데

얼마나 많은 날들이 필요할까, 그것이

가능한 일이기나 한 건가

 

내 가슴속의 수문은 열리지 않는다, 나는

끝없이 흘러 고이는 물을 가둬두고 있다

―이윤학

 

【산책】

가슴속에 흐르지 못하는 물이 있다.

흘려 내보지는 못하고, 자꾸 밀려들기만 한다.

수문이 있지만 늘 잠겨 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속에서 고여 썩어가는 물.

그것을 감정이라 부르든, 상처라고 부르든, 눈물이라고 부르든 내속에서 결코 빠져나가기를 거부하는 어떤 것.

 

사람들 중에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성당의 고해소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한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그 사람을 괴롭힌다.

마음 밖으로 내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가?

 

마음에 있지만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것들.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처럼

트림으로도 방귀로도 똥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꽉 막혀있는 것들.

 

겨울이면 얼어붙는 것들.

봄이 되어도 다 풀리지 않는 것들.

마음에 한파를 불러오고,

천둥과 번개를 가져오는 것들.

퍼내고, 걸러내고, 우려내도 남는 것들.

밖으로 나가지 못해 안에서 썩는 것들.

 

그러나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들.

일부러 나가지 않는 것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들.

그래서 사람들은 병드는가.

밖으로 나가야 할 것들을 무엇인가.

 

밖으로 나간다면 누가 그것들을 받아줄 텐가.

결국 누군가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위해 희생해야 하고,

나의 썩은 것들을 받아주고, 품어주고, 그래서 나대신 썩어줄 단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을까.

 

마음에 새롭게 간척지가 생긴다면?

아직은 민물도 갯물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물이 다 빠져나가고

바싹 마른 땅이 나타난다면?

 

당신은 태양일 것이다.

내속의 물을 다 말려버리고

맑은 내면으로 거듭나게 해 줄 당신은 해일 것이다.

 

마음속에서 썩어가는 것을 흘려 내보는 것은 나인가, 당신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간척지는 썩지 않기 위해 강력한 힘을 원하고 있다.

불도저 같은 사랑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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