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본느프와 <또 하나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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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브 본느프와 <또 하나의 소리>

by 브린니 2020. 6. 30.

또 하나의 소리

 

 

모든 것이 멈출 때

머리칼을 흔들거나 <불사조>의 재를 뿌리면서

그대는 무슨 몸짓을 시도하려 하는가,

그리하여 존재의 자정이 책상을 비치는 것은 언제인가?

 

모든 것이 침묵을 지킬 때

그대의 검은 입술 위에서 그대는 어떤 기호를,

어떤 가난한 언어를 지키려고 하는가,

아궁이에 불이 꺼져버릴 때 마지막 불씨를 지키려 하는가?

 

나는 그대 속에서 살아가리라,

그리고 나는 그대 속에서 모든 빛을 꺼내리라,

모든 화육化肉, 모든 암초, 모든 법을.

 

그리하여 내가 그대를 끌어올린 허무 속에다

나는 번갯불의 길을 열리라,

아니면 아직껏 소리친 적이 없는 가장 커다란 외침을.

 

                                           ―이브 본느프와(프랑스, 1923-2016)

 

 

【산책】

“그리하여 존재의 자정이 책상을 비치는 것은 언제인가?”

 

모든 것이 다 사라질 때 지키고 싶은 어떤 것이 있는가?

존재의 자정, 부재의 시간.

 

말言의 자정, 침묵의 시간

그 시간에 입술은 가난한 언어를 지키려고 한다.

 

이제 소리는 당신 속에서 빛을 낼 것이다.

허무 속에서 번갯불 같은 외침을 내뿜는다.

 

시계바늘이 한곳에서 멈추는 시간, 자정 혹은 정오.

움직임이 정지하는 짧은 순간

소리가 멎고 침묵이 지배하는 순간

입술에서 나오지 못하고 기다리는 영겁의 시간

허무가 존재를 무화하는 시간

그 시간을 거부하며 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숨죽이는 찰라

소리가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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